태국 어느 숲 속 빈터에서 한 나방이 곤충학자 한스 밴치거의 눈물을 마시고 있다. 곤충 중에는 더 큰 동물에 내려앉아 나트륨 원자가 들어 있는 액체를 핥아 먹는 것들이 꽤 많다. 사진=한스 밴치거
태국 어느 숲 속 빈터에서 한 나방이 곤충학자 한스 밴치거의 눈물을 마시고 있다. 곤충 중에는 더 큰 동물에 내려앉아 나트륨 원자가 들어 있는 액체를 핥아 먹는 것들이 꽤 많다. 사진=한스 밴치거
수많은 학문 중에서 범위가 가장 넓은 건 아마 물리학일 것이다. 거대한, 아니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를 탐구하는 천체물리학부터 양자의 세계까지 다루는 게 물리학이다. 이처럼 방대한 연구대상이 하나의 학문으로 묶일 수 있는 것은 극미(極微)한 세계와 극대(極大)한 세계가 상통하기 때문이다.

《원자, 인간을 완성하다》는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 구성 요소인 원자를 통해 인간과 세상, 우주를 읽어내는 물리학적 인문서다. 미국 뉴욕주 북부 폴스미스대에서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산소, 수소, 철, 나트륨, 탄소, 질소, 칼슘, 인 등 8가지 원자를 통해 인간의 존재를 해석한다. 그런데 이 원자들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아득한 옛날, 아득한 별의 먼지에서 오늘날의 생명이 잉태된 것처럼 원자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우주와 인간의 순환고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평균 체격의 성인은 약 2×10의 24제곱에 해당하는 산소 원자를 갖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숲의 나뭇잎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그런데 엄지손가락에서 산소 원자 하나를 살짝 떼어내 확대해 보면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원자의 중앙에는 양전하로 대전된 양성자 8개와 중성자 8개의 덩어리가 흔들리고 있고, 음전하로 대전된 전자들이 그 바깥에서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다. 전자로 둘러싸인 공 모양의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원자의 빈 공간을 생각하면 인간이란 구멍이 숭숭 뚫린, 가벼운 원자 스티로폼에 가깝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체의 본질이 공기도 없이 텅 빈 심연의 우주 공간과 닮았다고 과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우주에서 여섯 번째로 풍부한 원자인 철은 별들의 킬러요 우주에서 가장 파괴적인 원소다. 저자는 “우주학자들에게 철의 존재는 범죄 현장을 조사하는 탐정에게 화약의 흔적과도 같다. 별들의 살인범이 바로 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철은 생존의 마스터키나 다름없다. 철은 공기 중에서 산소를 수확하는 도구이자 미생물 침입자를 대적하는 무기다.

저자는 이처럼 각 원자들의 특성과 유래, 순환작용 등을 인체와 자연, 우주에 적용하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내뱉는 숨 속의 탄소 원자는 머지않아 어느 산에 있는 나무의 줄기가 되고, 갖가지 이유로 흘린 눈물 속 나트륨은 화산 분화구에서 새어나와 원시의 바다 위를 함께 표류했던 염소 이온과 짝을 이뤘고 마침내 맛있는 음식에 담겨 우리 입속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기의 78%나 차지하는 질소는 양면성을 지닌 생명의 원소다. 공기 중의 질소는 비료도 되고 폭약도 된다. 평소 우리 몸의 세포들은 질소 분자를 그냥 떠돌이 나그네로 취급한다. 몸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질소 원자가 필요하지만 산소와 달리 인간은 질소를 호흡으로 충당할 수 없다. 먹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질소를 먹을 수 있게 하는 다른 생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먹이사슬을 따라 질소가 이동하는 이유다. 그런데 인간이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 비료를 만들고 식물을 키우면서 끊임없이 돌아가야 할 지구적 질소 순환을 교란시켰다. 저자는 그래서 지구 온난화 논쟁은 탄소 배출 못지않게 질소 순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학자가 쓴 책이지만 읽다 보면 철학이나 종교적 가르침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물질은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물질의 흐름이 마침내 느려지거나 충분히 오랫동안 정지되면 한데 모여 우리를 유지하던 덧없는 원자들도 결국 우리 몸에서 흩어져, 살던 마을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