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정신 입각한 해산요건 판단
진보정치 枯死 빌미 돼서는 안돼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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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예측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언론에선 재판관 성향을 분석해 결정 방향을 예측하기도 한다. 사실 법리적 요인 못지않게 재판관의 출신, 선임 배경이나 성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법사회학적 통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재판관들이 그런 주관적 요인에 휘둘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오히려 우리 헌법 제8조 제4항에 담긴 헌법정신을 천착해 정당해산의 요건을 엄정히 도출하고 그 해당 여부를 깊이 들여다봤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 헌법의 정당해산 조항은 이탈리아와 서독 헌법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점은 당시 헌법개정회의록에서도 확인된다. 그 대상으로는 공산당이나 일당독재를 꿈꾸는 ‘파시스트’당, 왕정복고를 꾀하는 정당이 거론됐다.
헌재가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은 또 하나의 단서를 꼽는다면 베니스 위원회의 지침, 특히 ‘정당 금지·해산에 관한 지침’(1999)과 정당 관련 모범준칙(2009)을 빼놓을 수 없다. 1999년 지침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제3원칙과 제5원칙이다. 전자는 정당해산은 정당이 민주적 헌정질서 전복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폭력의 행사를 옹호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고 그 결과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와 자유를 훼손하는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고, 헌법의 평화적 교체를 주장한다는 것만으로는 정당을 해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자는 정당해산은 특별히 극단적 조치인 만큼 최대한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하고, 정부는 제소 전에 해당 국가의 상황과 관련해 정당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질서나 개인의 권리에 현실적으로 위험을 초래했는지 또는 강도가 덜한 방법으로 위험을 방지할 수 있을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진당 사건을 이에 비춰 보면 결국 사실관계 판단이 관건이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현실적 위협 여부, 특히 북한과의 관계, 북한이 추구해온 적화통일론의 동조 또는 전파 여부 등을 입증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헌법상 정당국가는 두 얼굴을 가진다. 한편에선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 보장, 국가의 보호와 자금지원으로 반기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해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헌재 결정은 어느 쪽이든 정치권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올 것이다. 해산결정이 날 경우 통진당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과 정당법 제48조 제2항에 따라 잔여재산 국고 환수라는 결과가 예상된다. 의원직 상실 여부는 독일처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라 연방선거법 등에서 의원직 상실을 명문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헌재가 해산 결정과 함께 의원직 상실을 선고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당금지는 그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 없이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1952년 사회주의제국당 위헌결정이 나온 뒤 그 판례를 연방과 각 주 법률에 반영한 독일의 선례도 있다.
해산결정이 나더라도 진보정치 전체를 일방적으로 싸잡아 매도하는 최면에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잖아도 쇠퇴일로를 면치 못했던 진보정치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정치적 다양성이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기각결정이 난다면? 박근혜 정부에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고 누구도 정치적 모험 실패에 따른 책임 문제를 피해가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누구 손을 들어주든 헌재의 결정은 현행 헌법상 정당해산 제도의 정신과 요건에 대한 헌법해석의 결과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식의 단순논리를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프레임에 걸어 확산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사회의 건전한 이성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당국가의 두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