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혼란만 키운 유치원 추첨 지침
“도대체 애들을 유치원에 보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내년에 유치원 입학 예정인 딸을 둔 주부 박모씨(35)는 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연신 분통을 터뜨렸다. 전날 저녁 유치원에 중복 지원할 경우 입학을 취소하겠다는 서울교육청 발표를 듣고 부랴부랴 지원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청이 왜 이렇게 학부모들을 골탕 먹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교육청이 유치원 중복 지원으로 인한 혼란을 막겠다며 내놓은 중복 지원 방지책이 오히려 학부모들을 더 큰 혼란에 빠지게 했다. 서울교육청은 지난달 유치원 지원 횟수를 4회로 제한한다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유치원 추첨일도 사립유치원은 가군(12월4일), 나군(5일), 다군(10일)으로, 공립은 가군(10일)과 나군(12일)으로 제한하고 중복 지원도 금지했다. 일부 유명 유치원의 입학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자 무제한이던 유치원 지원 횟수를 올해부터 제한하기로 했다.

혼란을 줄이겠다는 의도와 달리 서울교육청의 주먹구구식 행정은 문제를 더 키웠다. 군(群) 선택을 유치원 자율에 맡기자 서울시에 있는 유치원 553곳 중 344곳(62%)이 가군을 택했고 162곳(29%)이 나군, 47곳(8%)이 다군을 택했다. 학부모 입장에서 지원 기회는 크게 줄고 경쟁은 되레 치열해졌다.

선택 폭이 줄어든 학부모들은 입학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중복 지원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개별 유치원이 교육청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중복 지원을 가려낼 방법이 없다. 학부모들은 교육청의 중복신청 금지 방침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중복 신청을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서울교육청은 추첨 시작일 하루 전인 3일 저녁 부랴부랴 각 유치원에 “15일까지 지원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중복 지원이 적발되면 입학을 취소시킨다”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여러 곳에 중복 지원했던 학부모들이 신청을 취소하느라 뛰어다니면서 ‘취소대란’이 빚어졌다. “자기 아이를 맡길 만한 유치원을 고르는 것은 학부모에게 맡겨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가 학부모를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괴롭히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임기훈 지식사회부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