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상속 공제대상을 확대해 장수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추진된 상속·증여세법 개정이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여야는 가업상속 공제대상을 매출액 3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에 합의했지만 이번에도 ‘부자 감세’ 공세를 넘지 못했다.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이다.

다들 입만 열면 규제를 풀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하지만 정작 기업에 절실한 규제완화는 대부분 거절해버리는 것이 이 나라 국회다. 무엇보다 ‘부자 감세’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여야 할 것 없이 몸을 사리고 입을 닫아버린다. 그런데 정작 그 부자 감세라는 것은 실체도 없다. 야권에서는 이전 정부에서 법인세를 일괄 3%포인트 인하한 것을 부자 감세로 정의한다. ‘법인=부자’라는 터무니없는 도식이다. 평균 업력이 8.6년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지원해 강소기업을 키우자는 이번 세법 개정도 부자 감세로 낙인 찍어 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기업은 다 부자요, 결코 지원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 많은 중소기업 지원책도 모두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말인가. 선거 때마다 중소기업 지원을 외친 건 부자를 도와주자는 말이었나. 상속세를 신성시하는 태도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징벌적 상속세제는 본질적으로 반기업적이다. 대기업의 경우 기본 50%에 가산세를 포함하면 최고 65%에 달하는 세율부터가 그렇다. 상속세를 내고나면 기업이 반으로 쪼개진다. 백년 기업은 고사하고 기업의 실체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공제 한도 확대조차 막아버린다면 강소기업이나 히든챔피언은 아예 꿈도 꿀 수 없다.

상속세는 개정이 아니라 폐지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캐나다 호주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OECD 국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1개국에는 상속세가 아예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세율이 40%나 되는 미국도 기업이 지속되는 한, 과세이연을 통해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독일은 가업 상속자산의 100%를 한도 없이 공제해준다. 툭하면 외국 사례 인용하기 좋아하면서 왜 이런 건 배우려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