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디너쇼
중세 교회에서는 성탄절 무렵에 왕족이나 귀족 등 후원자들을 초청해 저녁을 대접했다. 풍성한 코스요리가 나오는 중간에 흥겨운 노래와 연극이 빠질 수 없었다. 만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교회음악이지만 세속음악도 다채롭게 즐겼다. 이것이 16세기 이탈리아 세속 성악곡 마드리갈의 이름을 딴 ‘마드리갈 디너’로 발전했고, 영국과 미국을 거쳐 지금의 송년 디너쇼로 이어졌다고 한다.

영미권에는 디너쇼를 즐기는 상설극장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급호텔 연회장을 활용한다. 고급 요리·와인 등으로 식사를 하고 그 자리에서 유명 가수의 공연을 즐긴다. 어버이날이 있는 5월과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12월에 많이 열리는데 최대 성수기는 아무래도 12월이다. 주요 관객은 중장년층이다. 티켓 가격이 20만~25만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국내 디너쇼의 역사는 꽤 오래됐지만 관련 기록이나 문서는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1960년 조선호텔에서 열린 패티김의 ‘만찬 공연’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미8군 무대로 데뷔한 2년차 신인 패티김은 정장 차림의 남성과 롱드레스 차림의 여성들로부터 식탁보가 흔들릴 정도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몇년 전 은퇴할 때까지도 “디너쇼의 개척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디너쇼라는 말이 일반화된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 물론 아무나 설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다. ‘디너쇼 여왕’ 패티김과 ‘엘레지 여왕’ 이미자, 나훈아·남진·조용필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20~30년 전 입장료가 15만원 안팎이었으니 관객들도 자식의 첫 월급날이나 무슨무슨 기념일을 계기로 큰맘을 먹어야 했다. 빌린 밍크코트를 입고 호텔 자동문 앞에서 움찔움찔 놀라던 그 시절 어머니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올해도 유명 가수들의 디너쇼가 줄을 잇는다. 데뷔 55주년을 맞은 이미자는 24~25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디너쇼를 연다. 560장의 음반을 발표한 국민가수의 회고전인 데다 메뉴도 건강식 코스요리라니 감회가 새롭겠다. 26일 같은 장소에서 조영남 디너쇼도 열린다. 혜은이는 19, 20일 쉐라톤그랜드워커힐에서 40주년 디너쇼, 주현미는 21~22일 63컨벤션센터에서 30주년 디너쇼를 연다. 심수봉(23, 25일), 장윤정(17, 18일), 박현빈(28일)도 가세한다.

요즘은 가정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회식 대신 디너쇼 등 ‘문화송년회’ 콘셉트를 선호한다고 한다. 밤새 2차, 3차를 외치며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보다야 훨씬 세련되고 지혜롭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