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차 못 써 엘리베이터로 오르락내리락…시스템창 달린 아파트 '이사 대란'
“여기 관리사무소인데요. 지금 19층으로 이삿짐이 들어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에 다른 짐이 있다고 하네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신규 입주가 진행 중인 서울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4단지 관리사무소엔 점심시간에도 이사 일정을 묻는 전화가 이어졌다. 임승현 마포래미안푸르지오 관리사무소 부소장은 4일 “입주 예정자들이 사무소에 전화해서 이사 날짜를 예약해야 한다”며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차 있으면 다른 날로 조정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이삿짐을 승강기를 통해 옮겨야 한다. 단열효과가 뛰어난, 창틀 간격이 좁은 시스템 창호를 설치해 베란다로 짐을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앞에 꾸며놓은 나무나 화단 등 조경시설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도 사다리차 대신 ‘승강기 이사’를 의무화한 배경이다.

최근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단지 가운데 이 같은 이유로 사다리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새 아파트 입주 이사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3885가구 규모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최근 하루 평균 25가구가 입주 이사를 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이사를 마친 입주민 김보람 씨는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한 라인당 하루 세 가구밖에 이사를 할 수 없다”며 “주말은 예약이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금요일 월차를 내 이사했다”고 말했다.

이사는 한 라인당 오전 9~12시, 낮 12시~오후 3시, 오후 3~6시 등으로 시간대를 나눠 세 가구만 진행한다.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짐이 한정돼 있어 이사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이사한 4단지 입주민은 “예전에 이사할 때는 6시간 걸렸는데 이번에는 거의 12시간 가까이 걸릴 것 같다”며 “엘리베이터 이용 시간이 맞물리면서 다른 집이랑 이삿짐이 바뀌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서울 상수동 ‘래미안밤섬리베뉴’(959가구)는 동과 라인에 따라 사다리차 이용 여부가 갈린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조경시설이 어떻게 배치돼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가장 정확한 건 이삿짐센터 직원이 와서 판단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다리차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민원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5월 입주한 ‘수원 SK스카이뷰’는 조경과 시설물 훼손을 막기 위해 사다리차 사용 불가 방침을 정했다. 사다리차를 쓰지 못해 입주가 늦어지는 사례가 잇따르자 결국 이 단지는 한 달 뒤 사다리차 2대와 입주 전문 인력 10여명을 지원했다. 이사 과정에서 훼손된 조경시설은 시공사가 보수해주기로 약속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