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아랫사람만 '총대' 허다
권한 배제한 채 책임만 지운다면
주인의식 결코 작동할 수 없어
정부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다가 국민적 불만이 커지자 실수를 자인하고 사과했다. 힘없는 관리자를 통해서였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교육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의 장이나 더 나아가 국정 최고 책임자로부터의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 제시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서지 않았다. 다만 며칠 후 ‘특별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짧고 간단한 지시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행동했다.
이런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민들을 놀라게 한 국가적 사고나 사건들을 대하는 정부의 대응은 항상 똑같다. 해당 분야의 최고 책임자나 국정 책임자가 나서서 책임을 통감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보았다는 자원외교,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가권력기관 사건,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는 방위산업 비리, 이미 수십조원의 돈을 쏟아 부었고 향후에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다는 4대강 사업, 의무라고 해서 보낸 젊은 아들들이 느닷없이 죽어 나오는 군대폭력 사건, 3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이 수장돼도 단 한 명도 생환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 등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응은 한결같다. 힘없는 몇 사람이 그 엄청난 사고와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해당 기관의 장이나 국정 최고 책임자가 자신의 책임을 절감한다고 전면에 나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주체적으로 리드하는 것을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최고 권력자만 존재하고 최고 책임자는 없기 때문일까. 국가적 사고나 사건에 최고 책임자는 정말 일말의 책임도 없어서일까. 책임을 통감한다고 한다면 그들의 지위에 중대한 흠결이라도 생기는 걸까.
어떤 이유에서 이런 관행들이 일상화되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런 행태가 일상화되는 조직은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고 책임자가 권력만 향유하고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전가하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도전은 사라지고 최대한 안정적인 일만 하게 된다. 눈치만 난무하고 시키는 일만 하게 되는 복지부동이 만연해진다. 최고 책임자가 그토록 싫어한다는 복지부동을 그 스스로가 만드는 꼴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정부에서만 발생할까. 기업에서는 발생하지 않을까. 문제가 생기면 최고경영자는 그 책임에서 비켜서고 힘없는 아랫사람이 소위 총대를 메는 일 또한 허다하다.
최고경영자가 모든 임직원에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주인의식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주인의식 속에는 분명 책임감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책임감은 ‘선택권과 결정권’이 전제돼야 비로소 존재한다. 업무의 방향과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오너십이 생긴다. 과정에서 선택과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주인이 되고, 그럴 때 그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책임감이다.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을 제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권한은 배제한 채 책임만 지운다면 결코 주인의식이 작동할 수 없다. 지시에 의해 책임만 지는 사람은 ‘종’일 따름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해 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면 채용시 종을 선발하고, 종이라는 명찰을 정확하게 붙여주고, 그들이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강조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이 종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이다. 종의 역할을 하게 하면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한다면 모순이고 자기당착이다.
박기찬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