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금리 전망 '통일 변수'까지 고려한다는데…
통일은 올해를 달궜던 화두였다. 올초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온 직후였다. 정책연구자들은 통일의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느라 분주했다. 지난달 말엔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달 초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해가 가기 전에 그 성과를 갈무리하는 분위기다.

시장의 관심은 더 현실적이다. 최근 A증권사 채권분석가는 “요즘 기관투자가들이 남북통일 직후 시나리오를 그려달라고 많이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10년 이상 장기채권을 투자할 때 통일은 빼놓을 수 없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초저금리 때문에 수익 낼 데가 없어 울상인 보험사들 사이에서 이 같은 질문이 많다고 한다.

10년 넘게 채권시장을 봐온 그의 눈에 통일은 일단 ‘리스크(위험)’다. 그는 “통일이 급물살을 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단기적으로 한국 시장을 이탈할 가능성은 80%”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등 단기투자자들은 당장의 불확실성에 민감하다.
장기금리 전망 '통일 변수'까지 고려한다는데…
남북이 통일된 독일처럼 경제 규모를 키우면서 새로운 강국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게 언제인지도 알 수 없다. 그는 “통일을 대박의 기회로 삼는 투자자가 있다면 남다른 혜안과 여유를 가진 극소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투자자가 이탈하면 원화 환율은 뛰게 된다. 통화가치가 내리면 수출 경쟁력엔 호재다. 그런데 반대 현상이 통일 독일에서 나타났다. 통일 직전 서독 마르크화와 동독 마르크화는 4 대 3의 비율로 거래되고 있었다. 오창섭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통일 뒤 두 통화를 1 대 1로 통합한 게 문제였다”며 “고평가된 동독 통화가 투기대상이 되면서 통화가치가 오히려 올랐다”고 설명했다. 시장 가치를 무시한 정치적 논리는 통일 이후 독일 통화를 5년간 강세로 이끌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통일 기대감으로 급등했던 주가는 1990년 8월 통일조약 이후 하락해 3년간 갈지자를 그렸다. 실제 통일 과정에서 비용문제와 사회 혼란이 제기되면서다.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장은 통일비용을 향후 30년간 2200조~5500조원으로 내다봤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내년 정부예산 375조원 가운데 19.5~48.9%에 달한다 .

독일은 통일 이후 5년간 통일기금의 83%를 국채 발행으로 조달했다. 세수를 늘려 충당하려니 국민들 부담과 반발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일 정부부채 규모는 통일 이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에서 1990년대 말 60%까지 늘었다. A증권사 채권분석가는 “통일 뒤 한국의 채권발행 잔액은 두 배가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채권 금리가 400bp(1bp=0.01%포인트)까지 오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과제도 많다는 얘기다. 다만 채권분석가의 전망에 불과한 점은 감안해야 한다. 안전자산인 채권을 취급하는 이들은 시장의 빛보다 그림자를 보는 데 더 익숙하다.

낙관론자들은 시야를 더 멀리 둔다. 2000년대 독일 경제는 순항을 이어갔고 세계 4대 경제강국으로 자리잡았다. 통화가치는 1995년 이후 안정세를 찾아갔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200bp 급등했던 채권금리도 1990년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투자협회는 올초 한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 독일 통일은 기회였다”며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었고 유럽 통합과정도 호재가 됐다”고 말했다. 저출산과 내수 부진으로 허덕이는 한국 경제도 통일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시나리오를 그리기에는 너무 변수가 많다. 서독과 달리 한반도에는 한국 주도의 통일에 너무도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