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박철언 前 장관 "官運은 없었지만 文運은 좀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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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문학상 대상 받은 詩人 박철언 前 장관
문학 전공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중고교 시절부터 문학동아리 활동…대학 때 니체·헤세 작품 원문으로 읽어
주변 압박에 사법시험…官의 길로
'바람이…'는 모친께 헌정하는 시
나이들수록 어머니 생각 간절해져…매주 금요일 모친 문안 드리러 고향 가
리더는 인문학적 소양 갖춰야
文史哲 이해 없으면 판단 편협해져…감성 알아야 소통, 그래야 갈등 봉합
문학 전공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중고교 시절부터 문학동아리 활동…대학 때 니체·헤세 작품 원문으로 읽어
주변 압박에 사법시험…官의 길로
'바람이…'는 모친께 헌정하는 시
나이들수록 어머니 생각 간절해져…매주 금요일 모친 문안 드리러 고향 가
리더는 인문학적 소양 갖춰야
文史哲 이해 없으면 판단 편협해져…감성 알아야 소통, 그래야 갈등 봉합
‘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
시인 박철언이 올초 펴낸 세 번째 시집이다. 그가 최근 이 시집으로 ‘제19회 영랑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5공화국의 설계자’ ‘6공화국의 황태자’ 등으로 불리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 바로 그 사람이다. 영랑문학상은 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을 기려 만든 상이다. 정계를 은퇴한 지 14년, 박 전 장관은 어느 새 김윤식 선생과 같은 ‘서정시의 대가’로 변해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 역삼동 한반도복지통일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축하 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자 “관운(官運)은 없지만 문운(文運)은 좀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관운이 없다고 하는 건 지나친 말 아니냐”고 묻자 “허리 빠지게 일만 했지, 정치 보복으로 감옥까지 갔으니 별로 관운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죠”라고 되받았다. 그는 법적으로는 유죄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무시무시한 권력 한복판에서 현대사를 호령하던 그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대신 많은 한(恨)을 시로 담아 승화시키고 있는 듯했다.
어릴 적에는 ‘문학 소년’
박 전 장관은 사실 문학 전공 교수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고, 대학에 가서는 니체·헤세 등 독일의 대(大)학자들 작품을 원문으로 읽는 ‘독우회’ 멤버로 활동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천재 작가 전혜린(당시 서울대 강사)이 모임을 이끌었다. 그러나 부모님 등 주변의 압박에 사법시험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헌법학의 대가인 김철수 교수 밑에서 조교 활동을 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8회 시험에 합격했다. 군 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부산지검, 법무부를 거쳐 서울지검에서 공안부 검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1980년, 법무부로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국보위) 파견 명령을 받고 6월 법제사법분과위원을 맡았다. 그는 “그때부터 법조를 떠나 국가 운영, 정치에 깊숙하게 개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신군부의 2인자 노태우 전 대통령(외사촌 자형)과의 인척 관계도 물론 크게 작용했다.
정치는 정말 진흙탕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을 올해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99세인 그의 모친도 현재 4년째 투병 중이다. 그의 시집 ‘바람이…’는 모친께 헌정하는 의미도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고향에 대한 사랑, 향수입니다. 사람들, 참 많은 욕망을 갖고 살아가죠. 하지만 차츰차츰 하나씩 잃어가고, 버리게 되죠. 하고 싶지 않아도 누구나 그렇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보통 매주 금요일 모친에게 문안 드리려 고향으로 떠난다. 이때 이사장으로 있는 ‘대구경북발전포럼’ 일도 겸사겸사 하고 있다.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이다. 그는 72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비결을 물었다. “돈이 들어오는 데는 없으니까 백수인데…(웃음) 정치를 떠나서 지금은 조용하게 봉사하고 있으니까. 정치는 정말 진흙탕입니다. 거길 떠나니까 마음은 아주 편하고, 몸은 아주 바쁘게 살고 있어요. 얼굴이 어두워질 일이 없습니다.” 항상 새벽 4~5시에 일어나 신문, 책 등을 읽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건강 비결이다.
남다른 가족사랑
그는 소위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 마치 ‘초대 체육청소년부 장관’의 사명에 충실한 것 같은 느낌이다. 2녀 1남 중 큰딸은 체육을 전공하고 현재 필라테스 관련 사무실을 운영 중이며, 한국체대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박 전 장관은 “큰딸은 미래회라는 봉사회를 만들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딸은 미국 뉴잉글랜드컨서바터리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소프라노 박상영 씨다. 막내인 아들은 한때 승마선수로 활약했고, 대기업에 다니다 지금은 박 전 장관의 일을 틈틈이 돕고 있다. 박 전 장관의 부친도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가였다고 하니 ‘예·체능적 기질’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정치 할 때 늘 곁을 지켜주고, 야인이 되고 나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이해하고 배려해준 아내에게 항상 고맙다”고 했다. 연신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그에게서 짙은 가족 사랑이 느껴졌다.
슬롯머신 사건에 대해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불거진 ‘슬롯머신 사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슬롯머신 대부’라는 정모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1993년 5월22일 구속 수감됐고, 이듬해 6월2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그가 바라본 사건에 대한 전후 사정과 옥중 이야기, 심정 등은 그의 자서전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계기도 수감생활에 있다. ‘감옥의 국화꽃밭’ ‘눈 내린 새벽’ ‘민들레꽃’ 등 절절한 심정을 담은 시를 옥중에서 썼다. “교도관이 눈 감아줘서 엽서 한 장, 볼펜 한 장 빌려 시를 써 밖에 내보냈는데 그게 잡지에 실렸어요. 시인 조병화, 박재삼 선생님들이 추천해줬고 1995년 푸른 모자(등단)를 썼습니다. 오히려 옥중에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슬롯머신 사건은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대립각을 세웠던 자신에 대한 집요한 정치 보복’이다. 당시 사건 주임검사였던 홍준표 경남지사 얘기도 나왔다.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 예전에 떠난 사람이고 (홍 지사는) 창창한 분이고. 사건의 본질이 어떤지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리고 언론들도 문제가 많아요. ‘6공 황태자’를 6공에서 구속시켰으면 이해가 가는데, 정권 교체 후 각본에 따라 한 걸 두고 모래시계 검사니, 소신 검사니 하는 게 맞아요? YS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면서 사방에서 전부 외국으로 떠나라고 했습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안 도망갔어요.”
리더들에게 바란다
연말 정치권 뇌관으로 떠오른 ‘정윤회 문건’에 대해 그는 색다른 주장을 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 주위에는 공적 라인과 사적 라인이 있어요. 최고 권력은 가능한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비선(秘線) 라인을 통해서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결단은 본인(대통령)이 하는 것이고. 다만 제대로 된 사람들과 상종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문제가 되죠. 이번에 보니까 관련된 사람들이 덕과 소양이 있다고 보이진 않네요.”
그는 또 갈등이 있더라도 내부 소통을 통해 풀어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민감한 문제를) 밖으로 꺼내서 던져놓고 서로 박치기하며 싸워야 되겠습니까. 나라 망신입니다. 공직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인데, 소명과 역사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박 전 장관은 “리더는 반드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시인이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판단이 편협하고 옹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갈등을 봉합해서 한 방향을 제시하려면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고, 소통하려면 인간의 감성을 알아야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니까 각박한 갈등과 대결만 증폭되는 겁니다.”
■ 그에게 詩란…
인간은 원초적 고독감 갖는 존재
감성의 바다서 영혼의 울림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한 것
박철언 전 장관은 시를 ‘영혼의 절규’로 정의한다. 다작하는 편은 아니고,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이나 잠을 설친 이른 새벽에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 주로 쓴다고 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초적인 고독감을 갖고 방황하는 존재이며, 그런 감성의 바다에서 영혼의 울림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를 통해서만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사랑을 노래하는 듯한 구절이 많이 나온다. 그는 “이성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영적인 느낌, 조국 또는 공직생활, 절대자 등 모든 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시 ‘나는 누구인가요’의 마지막 연인 5연은 ‘거센 파도 타고 오는/외로움에 사로잡혀/낯선 그대에게 눈멀어/나는 나를 잃어버렸네요/나는 누구인가요’로 끝난다. 시인인 오양호 평론가는 “앞 연에서는 이성과의 은밀한 대화로 읽힐 만큼 그대와 행복, 공존을 바라다 시의식이 반전을 한다”며 “국가 원수의 밀명을 받고 적국 심장에 잠행한 이력 등 치열한 삶의 행로가 그의 문학에 남다른 자산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영하 월간 순수문학 주간은 ‘맑은 영혼의 서정시’, 김천우 세계문인협회 이사장은 ‘감성 치유의 완결판’이라며 그의 작품을 치켜세웠다.
영랑문학상 대상을 받은 시집의 타이틀 ‘바람이…’ 마지막 연은 ‘지금 여문 것은/한때 긴 고통의 강을 건너온 것이라고/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다. ‘바람’이 슬롯머신 사건이냐고, 언제 잠들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런 작은 바람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바람을 만나죠. 눈을 감아야만 바람이 잠들 겁니다.”
■ 박철언 前 장관
△1942년 8월5일 경북 성주 출생
△경북중·고 졸업 1965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67년 제8회 사법시험 합격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
△1989년 정무장관
△1990년 체육청소년부 장관
△13·14·15대 국회의원
△현 한반도복지통일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
글=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hsweat@hankyung.com
시인 박철언이 올초 펴낸 세 번째 시집이다. 그가 최근 이 시집으로 ‘제19회 영랑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5공화국의 설계자’ ‘6공화국의 황태자’ 등으로 불리던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 바로 그 사람이다. 영랑문학상은 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을 기려 만든 상이다. 정계를 은퇴한 지 14년, 박 전 장관은 어느 새 김윤식 선생과 같은 ‘서정시의 대가’로 변해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 역삼동 한반도복지통일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축하 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자 “관운(官運)은 없지만 문운(文運)은 좀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관운이 없다고 하는 건 지나친 말 아니냐”고 묻자 “허리 빠지게 일만 했지, 정치 보복으로 감옥까지 갔으니 별로 관운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죠”라고 되받았다. 그는 법적으로는 유죄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무시무시한 권력 한복판에서 현대사를 호령하던 그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대신 많은 한(恨)을 시로 담아 승화시키고 있는 듯했다.
어릴 적에는 ‘문학 소년’
박 전 장관은 사실 문학 전공 교수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고, 대학에 가서는 니체·헤세 등 독일의 대(大)학자들 작품을 원문으로 읽는 ‘독우회’ 멤버로 활동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천재 작가 전혜린(당시 서울대 강사)이 모임을 이끌었다. 그러나 부모님 등 주변의 압박에 사법시험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헌법학의 대가인 김철수 교수 밑에서 조교 활동을 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8회 시험에 합격했다. 군 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부산지검, 법무부를 거쳐 서울지검에서 공안부 검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1980년, 법무부로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국보위) 파견 명령을 받고 6월 법제사법분과위원을 맡았다. 그는 “그때부터 법조를 떠나 국가 운영, 정치에 깊숙하게 개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신군부의 2인자 노태우 전 대통령(외사촌 자형)과의 인척 관계도 물론 크게 작용했다.
정치는 정말 진흙탕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을 올해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99세인 그의 모친도 현재 4년째 투병 중이다. 그의 시집 ‘바람이…’는 모친께 헌정하는 의미도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고향에 대한 사랑, 향수입니다. 사람들, 참 많은 욕망을 갖고 살아가죠. 하지만 차츰차츰 하나씩 잃어가고, 버리게 되죠. 하고 싶지 않아도 누구나 그렇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보통 매주 금요일 모친에게 문안 드리려 고향으로 떠난다. 이때 이사장으로 있는 ‘대구경북발전포럼’ 일도 겸사겸사 하고 있다. 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장애인을 지원하는 일이다. 그는 72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비결을 물었다. “돈이 들어오는 데는 없으니까 백수인데…(웃음) 정치를 떠나서 지금은 조용하게 봉사하고 있으니까. 정치는 정말 진흙탕입니다. 거길 떠나니까 마음은 아주 편하고, 몸은 아주 바쁘게 살고 있어요. 얼굴이 어두워질 일이 없습니다.” 항상 새벽 4~5시에 일어나 신문, 책 등을 읽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건강 비결이다.
남다른 가족사랑
그는 소위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 마치 ‘초대 체육청소년부 장관’의 사명에 충실한 것 같은 느낌이다. 2녀 1남 중 큰딸은 체육을 전공하고 현재 필라테스 관련 사무실을 운영 중이며, 한국체대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박 전 장관은 “큰딸은 미래회라는 봉사회를 만들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딸은 미국 뉴잉글랜드컨서바터리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소프라노 박상영 씨다. 막내인 아들은 한때 승마선수로 활약했고, 대기업에 다니다 지금은 박 전 장관의 일을 틈틈이 돕고 있다. 박 전 장관의 부친도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가였다고 하니 ‘예·체능적 기질’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정치 할 때 늘 곁을 지켜주고, 야인이 되고 나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이해하고 배려해준 아내에게 항상 고맙다”고 했다. 연신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그에게서 짙은 가족 사랑이 느껴졌다.
슬롯머신 사건에 대해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불거진 ‘슬롯머신 사건’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슬롯머신 대부’라는 정모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1993년 5월22일 구속 수감됐고, 이듬해 6월2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그가 바라본 사건에 대한 전후 사정과 옥중 이야기, 심정 등은 그의 자서전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계기도 수감생활에 있다. ‘감옥의 국화꽃밭’ ‘눈 내린 새벽’ ‘민들레꽃’ 등 절절한 심정을 담은 시를 옥중에서 썼다. “교도관이 눈 감아줘서 엽서 한 장, 볼펜 한 장 빌려 시를 써 밖에 내보냈는데 그게 잡지에 실렸어요. 시인 조병화, 박재삼 선생님들이 추천해줬고 1995년 푸른 모자(등단)를 썼습니다. 오히려 옥중에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슬롯머신 사건은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대립각을 세웠던 자신에 대한 집요한 정치 보복’이다. 당시 사건 주임검사였던 홍준표 경남지사 얘기도 나왔다.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 예전에 떠난 사람이고 (홍 지사는) 창창한 분이고. 사건의 본질이 어떤지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리고 언론들도 문제가 많아요. ‘6공 황태자’를 6공에서 구속시켰으면 이해가 가는데, 정권 교체 후 각본에 따라 한 걸 두고 모래시계 검사니, 소신 검사니 하는 게 맞아요? YS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면서 사방에서 전부 외국으로 떠나라고 했습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안 도망갔어요.”
리더들에게 바란다
연말 정치권 뇌관으로 떠오른 ‘정윤회 문건’에 대해 그는 색다른 주장을 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 주위에는 공적 라인과 사적 라인이 있어요. 최고 권력은 가능한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비선(秘線) 라인을 통해서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결단은 본인(대통령)이 하는 것이고. 다만 제대로 된 사람들과 상종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문제가 되죠. 이번에 보니까 관련된 사람들이 덕과 소양이 있다고 보이진 않네요.”
그는 또 갈등이 있더라도 내부 소통을 통해 풀어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민감한 문제를) 밖으로 꺼내서 던져놓고 서로 박치기하며 싸워야 되겠습니까. 나라 망신입니다. 공직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인데, 소명과 역사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박 전 장관은 “리더는 반드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시인이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판단이 편협하고 옹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갈등을 봉합해서 한 방향을 제시하려면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고, 소통하려면 인간의 감성을 알아야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니까 각박한 갈등과 대결만 증폭되는 겁니다.”
■ 그에게 詩란…
인간은 원초적 고독감 갖는 존재
감성의 바다서 영혼의 울림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한 것
박철언 전 장관은 시를 ‘영혼의 절규’로 정의한다. 다작하는 편은 아니고,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이나 잠을 설친 이른 새벽에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 주로 쓴다고 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초적인 고독감을 갖고 방황하는 존재이며, 그런 감성의 바다에서 영혼의 울림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를 통해서만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사랑을 노래하는 듯한 구절이 많이 나온다. 그는 “이성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영적인 느낌, 조국 또는 공직생활, 절대자 등 모든 게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시 ‘나는 누구인가요’의 마지막 연인 5연은 ‘거센 파도 타고 오는/외로움에 사로잡혀/낯선 그대에게 눈멀어/나는 나를 잃어버렸네요/나는 누구인가요’로 끝난다. 시인인 오양호 평론가는 “앞 연에서는 이성과의 은밀한 대화로 읽힐 만큼 그대와 행복, 공존을 바라다 시의식이 반전을 한다”며 “국가 원수의 밀명을 받고 적국 심장에 잠행한 이력 등 치열한 삶의 행로가 그의 문학에 남다른 자산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영하 월간 순수문학 주간은 ‘맑은 영혼의 서정시’, 김천우 세계문인협회 이사장은 ‘감성 치유의 완결판’이라며 그의 작품을 치켜세웠다.
영랑문학상 대상을 받은 시집의 타이틀 ‘바람이…’ 마지막 연은 ‘지금 여문 것은/한때 긴 고통의 강을 건너온 것이라고/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다. ‘바람’이 슬롯머신 사건이냐고, 언제 잠들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런 작은 바람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바람을 만나죠. 눈을 감아야만 바람이 잠들 겁니다.”
■ 박철언 前 장관
△1942년 8월5일 경북 성주 출생
△경북중·고 졸업 1965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67년 제8회 사법시험 합격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
△1989년 정무장관
△1990년 체육청소년부 장관
△13·14·15대 국회의원
△현 한반도복지통일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대구경북발전포럼 이사장
글=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h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