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갑신정변과 김옥균
‘대원군을 즉각 환국하도록 하고 청나라에 대한 사대, 조공 허례를 폐지할 것.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평등권을 제정하고, 실력과 재능에 의해 인재를 등용할 것….’

130년 전 오늘(고종 21년·1884년 음력 10월19일), 서른세 살의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가 발표한 혁신정강의 일부다. 이들 개화파는 이틀 전인 12월4일, 조선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국 낙성식을 계기로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켰다. 일본의 힘을 빌려,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민씨 척족세력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겠다는 무력 쿠데타였다. 그러나 이 정변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진압되면서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1851년 2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옥균은 스물한 살 때인 1872년 문과 알성시(謁聖試)에 장원 급제했다. 홍문관 교리와 옥당 승지(玉堂 承旨), 정언(正言)을 거쳐 호조참판을 지냈다.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 각지를 방랑하며 오가사와라섬, 홋카이도에 연금되기도 했다. 1894년 3월 한·중·일 삼국제휴를 내용으로 하는 ‘삼화주의(三和主義)’를 주장, 청나라의 실력자 리훙장을 만나러 간 상하이에서 수구파 자객 홍종우에게 권총으로 암살당했다.

■ 김옥균

-1851년 충남 공주 출생
-1872년 알성문과 장원 급제
-1874년 홍문관 교리
-1884년 12월4일 갑신정변
-1894년 3월 상하이에서 피살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