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총 375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국회에서 법정 시한(12월2일)을 지켜 예산안을 처리한 것은 2002년 이후 12년 만이다. 여기에는 11월30일까지 국회 예산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정부 원안을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때문에 역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예결특위가 형해화됐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무력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맞짱 토론] 국회 예결특위 '상설 상임위化' 필요한가
정부가 지난 9월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376조원 규모였다. 정기국회는 9월1일부터 시작됐으나 세월호 특별법 협상 등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정감사 예산심사가 줄줄이 밀렸다. 실질적으로 국회에 주어진 심사 기간은 단 20일뿐이었다. 산술적으로 하루에 18조8000억원씩 다뤄야 했다. 졸속·부실 심사 우려가 적지 않았다.

매년 정기국회 기간에만 구성되는 국회 예결특위를 상시적으로 열 수 있게 하자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여야는 지난 6월 국회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예결특위 상설화’에 합의했다. 하지만 후속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정부·여당 입장에서 의회의 대정부 견제가 강해지는 데 따른 부담감이 많은 데다 예결특위가 상설화되면 다른 상임위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예결특위 상설화를 놓고 김현미 새정치연합 의원과 김정훈 조세재정연구원 본부장이 각각 찬반 토론을 펼친다.

찬성 375조 예산 2週만에 ‘겉핥기’…연중 심사로 재정건전성 높여야

특위위원 줄이고 임기 늘려 전문성 확보

[맞짱 토론] 국회 예결특위 '상설 상임위化' 필요한가
2015년도 예산안이 12년 만에 법정시한 내 처리됐다. 국회가 법을 준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옛 계수조정소위) 위원으로서 375조원의 새해 예산을 마감 시간에 쫓겨 제대로 심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든다.

이번 예산심의를 통해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와 관련된 문제 예산 4100억원을 삭감하고 누리과정 전담 교육재정 지원으로 5400억원을 증액하는 성과를 냈지만, 국회 예결특위가 손댄 삭감·증액 예산은 각각 3조원 규모로 전체의 단 1%에도 못 미쳤다.

375조원의 정부 예산을 심의하는데, 국회 예결특위는 심사 기일에 쫓기다 보니 전체회의와 예산안조정소위가 각각 7일밖에 열리지 못했다. 단순 계산하면 하루에 26조7000만원을 심사한 것이다.

최악인 것은 여야 15명으로 구성된 예산안조정소위가 모든 부처에 대한 삭감예산을 심사한 뒤 시한에 쫓겨 증액예산은 단 한 건도 심사하지 못한 채 여야 간사 협의로 넘기는 ‘반쪽 심사’를 한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른 정부안의 본회의 자동부의가 예결특위의 졸속 심사를 조장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예산심의가 입법, 국정감사와 더불어 국회의 3대 기능인데 아직 예결특위가 상임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가 악순환되는 것이다.

그동안 국회의 예산심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특히 작년에 여야는 ‘예산·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현행 상설특위인 ‘예결특위’의 문제점인 심사 전문성 부족, 다른 상임위와 겸임, 미시적 심사 치중 등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예결위 상임위화’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법안심사권 부여 등 이견으로 인해 논의가 중단됐다.

단 2주 만에 375조원의 예산심의를 마친 국회가 ‘졸속 심사’의 오명을 피해갈 방법은 결국 예결특위를 상임위화해 위원수를 현행 50명에서 30명으로 줄이고 임기도 1년에서 2년으로 늘려 위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다. 또 연말에만 반짝 심의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모든 과정에 보조를 맞춰 심사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맞짱 토론] 국회 예결특위 '상설 상임위化' 필요한가
국회의 예산심의권 강화를 위해 작년에 정부 예산안 제출 시일을 회기 마감 90일 전에서 매년 10일씩, 3년에 걸쳐 120일 전으로 앞당겼지만 정작 예산 심사를 강화해야 할 국회에서는 예결특위 상임위화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정부 예산은 8210개의 세부사업과 약 5만개의 개별사업으로 구성된 만큼 국회에서 꼼꼼하게 심의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더불어 내년도 국가채무가 570조원으로 매년 급증하는 만큼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거시적이고 총량적인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결특위 상임위화는 이뤄져야 한다.

누구보다 법을 잘 지켜야 할 국회가 헌법 54조에 나와 있는 ‘정부 예산안의 회계연도 30일 전 의결’을 잘 이행하면서 더 이상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부실한 심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예결특위 상임위화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성큼 다가왔다.

반대 상임위 예산 증액에 집착 우려…재정당국 권한 강화가 ‘바람직’

재정당국 무력한 日, 막대한 국가빚 시달려

[맞짱 토론] 국회 예결특위 '상설 상임위化' 필요한가
현재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 역할은 각 소관 상임위에서 검토한 예산 및 결산을 종합심사한 후 본회의에 부의하는 것이다. 상임위 전환 방식은 2단계의 상향식으로 이뤄지는 예산심사 방식(상임위의 예비심사 이후 예결특위의 종합심사)을 3단계의 하향식으로 전환하자는 게 핵심이다.

예결특위의 상임위 전환을 통한 3단계 예산심사 방식은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재정민주주의’를 위해 국회의 재정권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과 스웨덴에서 이 제도가 도입돼 재정 건전성이 제고됐다는 점, 그리고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에서 이 제도를 권고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3단계 예산심사 방식 도입시 상임위가 예결특위 한도를 지키지 않거나 국가 전체의 입장이 아닌 해당 부처와 해당 상임위 이해관계에만 집착한다면 3단계 예산 심사방식과 연계한 예결특위 상임위화는 현행 제도보다 개악이 될 것이다. 지출부처와 소관 상임위는 자기 분야 예산 증액에 총력을 기울이는 반면 그러한 노력을 종합한 결과가 국민들이 원하는 세금 부담을 훨씬 더 초과한다는 점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른바 예산과정에 나타나는 ‘공유지의 비극’이다. 이로 인해 거의 모든 국가가 국가부채와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한 국가의 재정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에는 크게 영국이 대표하는 위임형(웨스트민스터 방식)과 북유럽이 대표하는 합의형이 있다. 즉 다수당이 주로 집권하는 국가에서는 의회가 행정부의 재정당국에 재정권한을 위임하고, 연정이 주로 이뤄지는 내각제 국가는 의회 내 합의를 통해 스스로 재정 통제를 추구한다.

한국은 국회의 예산증액이 행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다. 실제 1960년대부터 재정당국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강력한 위임방식을 채택해 왔다. 한국의 국가채무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양호한 데엔 이 같은 합리적인 재정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맞짱 토론] 국회 예결특위 '상설 상임위化' 필요한가
미국은 다수당이 집권하는 대통령제임에도 불구하고 행정부에 대한 재정권한 위임이 없어 시퀘스터(예산 자동삭감), 재정절벽 등의 논란이 의회 내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정치체제는 웨스트민스터 방식이지만 실제로는 지출부처와 관련 상임위의 막강한 권한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국가채무가 공기업, 연금 등과 관련된 부채를 빼도 국내총생산(GDP)의 250%가 된다는 점은 일본의 재정당국이 무력하다는 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향후 예결특위의 상임위 전환에 대한 논의는 스웨덴 방식이 한국에서 가능한가에 있다. 하지만 행정부에 예산편성권을 주는 한국의 헌법 구조와 대통령제로 인해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한국이 성공적으로 채택해 왔고, 이론적으로 다수당 국가에서 바람직한 방식, 즉 행정부 재정당국에 재정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향후 우리가 당면할 재정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렵다. 재정제도는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보호하고 공유지의 비극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재정당국에 대한 위임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