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이 ‘예상대로’ 차기 은행장에 내정됨에 따라 우리은행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게 됐다. 다만 ‘이광구호(號)’는 시작부터 큰 부담을 안게 될 전망이다. 은행장 선출 과정이 ‘보이지 않는 손’ 논란으로 얼룩지면서 상처를 입은 탓이다.

이번 우리은행장을 뽑는 과정에선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인 이광구 부행장을 은행장에 앉히기 위해 서금회가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서금회와 상관없이 청와대 실세가 직접 나서 ‘판’을 뒤흔들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우리은행장 등 최근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출 과정을 둘러싼 논란을 놓고 ‘답답하다’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신(新)관치’는 과거 관치와 크게 다르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중론이다. 한 금융사 CEO는 “과거 관료나 정권 실세들이 대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저축은행 사태를 처리하는 등의 과정에서 잡음은 있었지만, 산업계 또는 금융계 발전을 위한 나름의 판단일 것이란 대의와 명분에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우리은행장과 대우증권 사장, 은행연합회장 등 선출 과정을 돌이켜보면 낙점한 사람을 CEO로 앉히겠다는 정부의 명분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최소한의 ‘절차’나 ‘눈치’도 괘념치 않고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우리은행의 경우 이 부행장의 차기 행장 내정설이 나돌 때는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을 때였다. 행추위가 선임한 후보를 청와대가 검증해 후보를 확정하는 요식행위조차 무시됐다는 얘기다. 대우증권 사장 선출 과정에선 이사회 절차가 원칙 없이 중단됐다가 다시 열리는 파행이 반복되기도 했다. 어김없이 ‘외압’과 ‘사전 내정’ 논란이 일었다. 십수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투서와 비방전까지 재연됐다.

금융사 CEO 자리를 바라보는 정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한 민간금융연구소 대표는 “정권 실세가 금융회사 CEO 자리를 그저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풍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