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메모(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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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메모는 영어 메모랜덤(memorandum)의 약자인데 어원은 라틴어 메모로(memoro)다. ‘반드시 기억돼야 하는 것’이란 뜻이다. 어떤 사건이나 협상 내용 등을 기억하기 위해 남긴 문서나 서류를 말한다. 메모랜덤은 각서(覺書)나 비망록(備忘錄)으로 번역된다. 이쯤 되면 자못 거창해진다.
각서로 번역되는 건 대부분 공식 문서다. 양해각서(MOU)는 계약 체결에 앞서 양측이 이해한 것을 확인하는 문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합의각서(MOA)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세부조항이나 이행사항 등을 구체화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다. 미국에는 대통령 메모(Presidential memorandum)라는 단어가 있다. 행정명령보다는 낮은 단계로 대통령 확인, 불승인 메모, 권고메모 등 세 종류가 있다.
대통령 확인은 경제제재 등 특정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통령이 이를 확인하는 문서다. 공개적으로 거부할 때는 불승인 메모를, 광범위한 정책성명을 낼 때는 권고메모를 대통령이 작성한다.
‘비망록’은 사적인 메모다. 시인 문정희는 ‘비망록’이란 시에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중략)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고 고백했다. 1981년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그룹 스물하나는 ‘스물한 살의 비망록’이란 노래에서 “자그마한 소리로 유혹하기보다는/내 커다란 소리로 노래하리”라고 다짐했다.
메모는 이렇게 사용하는 범위가 넓다. 쓰는 사람은 그저 끄적였을지 몰라도 사회적 이슈가 될 때는 전혀 다른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파문을 일으킨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메모는 ‘김·오히라 메모’다. 1962년 11월12일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맺은 대일청구권 관련 비밀합의각서다. 나중에 이 메모가 폭로되자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요즘은 비밀스런 메모도 온 세상에 바로 공개된다. 지난 10월 초에는 국감장에서 여당의원들이 야당의원을 비꼰 ‘쟤들은 원래 빼딱’ 메모를 서로 건네다 들켰다. 엊그제는 국회 교문위 회의에서 답변을 하는 김종 문체부 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가야’라는 메모를 건네다 의원들에게 혼쭐이 난 체육국장 사건도 있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은 “비망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엔 자신을 지키는 건 고사하고 들켜서 ‘피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설화(舌禍) 필화(筆禍)를 이을 가위 메모화(禍)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각서로 번역되는 건 대부분 공식 문서다. 양해각서(MOU)는 계약 체결에 앞서 양측이 이해한 것을 확인하는 문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합의각서(MOA)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세부조항이나 이행사항 등을 구체화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다. 미국에는 대통령 메모(Presidential memorandum)라는 단어가 있다. 행정명령보다는 낮은 단계로 대통령 확인, 불승인 메모, 권고메모 등 세 종류가 있다.
대통령 확인은 경제제재 등 특정 조치를 취하기 전에 대통령이 이를 확인하는 문서다. 공개적으로 거부할 때는 불승인 메모를, 광범위한 정책성명을 낼 때는 권고메모를 대통령이 작성한다.
‘비망록’은 사적인 메모다. 시인 문정희는 ‘비망록’이란 시에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중략)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고 고백했다. 1981년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그룹 스물하나는 ‘스물한 살의 비망록’이란 노래에서 “자그마한 소리로 유혹하기보다는/내 커다란 소리로 노래하리”라고 다짐했다.
메모는 이렇게 사용하는 범위가 넓다. 쓰는 사람은 그저 끄적였을지 몰라도 사회적 이슈가 될 때는 전혀 다른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파문을 일으킨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메모는 ‘김·오히라 메모’다. 1962년 11월12일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맺은 대일청구권 관련 비밀합의각서다. 나중에 이 메모가 폭로되자 김종필은 정계를 은퇴했다. 요즘은 비밀스런 메모도 온 세상에 바로 공개된다. 지난 10월 초에는 국감장에서 여당의원들이 야당의원을 비꼰 ‘쟤들은 원래 빼딱’ 메모를 서로 건네다 들켰다. 엊그제는 국회 교문위 회의에서 답변을 하는 김종 문체부 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가야’라는 메모를 건네다 의원들에게 혼쭐이 난 체육국장 사건도 있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은 “비망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엔 자신을 지키는 건 고사하고 들켜서 ‘피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설화(舌禍) 필화(筆禍)를 이을 가위 메모화(禍)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