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제 확대와 전환배치 유연화
모범사업장에 정책지원 집중해야"
조준모 <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
노동개혁을 한 선진국들은 정부가 먼저 공익위원회를 가동해 개혁안을 만들어 제시하고, 노사합의를 유도하고 조정하기 위한 일정을 명확히 설정한다. 노사합의에 실패하면 당초의 공익안대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안을 제시하기보다 백화점식으로 낱개 메뉴를 모아 조금씩 언론에 흘리고, 노사는 법률개정 등 구체적인 논의는 외면한 채 시간끌기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백화점식 메뉴 나열방식은 노사가 ‘패키지 딜’을 할 역량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불신의 늪에 빠진 현재 노사관계에서는 대타협이 불가능하다. 노사는 타협하는 체하면서 국회 입법추진 과정에서 서로 불리한 주제를 삭제하거나 변질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자신에게 불리한 메뉴를 제시할 리 만무하다.
정부는 전문성과 논리를 갖고 실현 가능한 안을 만들어야 한다. 입법이 필요한 부분도 최소화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진영논리가 팽배한 국회에서 개혁입법은 상정조차 되기 어렵고 상정되더라도 최종단계에서 변질되기 쉽다. 따라서 가급적 사회갈등을 최소화하는 저비용·고효율의 안을 상정해야 한다.
한국에서 노동개혁의 목적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기업·유노조 사업장에서 정규직의 과보호를 ‘적정보호’로 전환하고 경영진은 일자리 창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한국형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서는 ‘임금 유연성’과 ‘기능적 유연성’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금유연성은 기업성과와 임금의 연동성을 강화하는 것이고, 기능적 유연성은 근로자 전환배치를 유연하게 할 수 있는 현장의 인사관리 역량을 골자로 한다. 대규모 사업장의 임금체계는 호봉제가 지배적이고 전환배치는 대립적 노사관계와 단체협약으로 묶여 매우 경직적이다. 임금 유연성과 기능적 유연성의 제고는 기업성장·고용안정·생산성제고·임금상승·정년연장 등 모든 문제의 선결과제다. 이 경우 재계에서 강조하는 정리해고 등 해고유연성은 도리어 포기할 수 있는 과제라고 본다.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처럼 노사갈등만 유발해 소탐대실할 수 있는 과제가 정리해고 문제라고 판단된다.
이런 목표달성을 위한 전략으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꼽을 수 있다. 임금피크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전환배치, 저성과자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전환배치 등 현안과제들의 길목을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노사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노사가 근시안적이고 진영논리가 팽배한 사업장에서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는 불가능하다. 임금피크제에서 임금은 낮추고 정년은 연장해 근로자가 더 많은 생애임금을 얻는다 하더라도 노사관계의 질적 수준이 낮은 사업장에서는 과반수 동의를 얻기 어렵다. 다만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가진 사업장에서는 이 조항만으로도 유연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사업장 단위의 노사타협 모델을 확산시키고 모범사업장에 대한 정책지원을 집중할 수 있다. 만일 집단적 노사관계의 합리성·건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기존 근로자 전부가 아니라 당장 적용받는 근로자 집단에 한하거나 근로자 개인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동의절차 개선이 불가피하다.
이제 정부는 맥을 짚는 노동개혁안을 상정하고, 노사는 마감시간을 정해놓고 협상해야 한다. 학자 및 전문가들은 ‘팩트(fact)’를 국민에게 바로 알리고 공익과 합리성 범위 내에서 노사가 타결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노동개혁안에 무게가 실리고 입법부에서 실종되거나 변질될 가능성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조준모 <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