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 부진' 이탈리아 암울
2012년 극심한 재정 위기를 겪은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가 투기등급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5일 이탈리아의 취약한 경제성장 전망과 공공부채 부담 확대를 이유로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번 조정으로 이탈리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루마니아 러시아와 함께 투자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하게 됐다. 한 단계만 추가로 떨어지면 투기등급으로 내려앉는다.

S&P는 “이탈리아의 부진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커지는 공공부채 부담이 이번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배경”이라며 “경제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공공재정을 강화하는 데 실패하면 추가 조정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는 최근 13분기 중 1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했다. S&P는 이번에 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내년 이탈리아의 성장률 전망을 당초 1.1%에서 0.2%로 낮춰 잡았다. 증가 추세인 공공부채(유럽재정안정기금의 구제금융 제외)는 2016년 GDP 대비 133%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실업률이 지난 10월 사상 최고인 13.2%까지 높아진 상황이라 장기 침체에서 탈출하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탈리아 경제에 다시 적신호가 켜지면서 2월 취임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사진)의 입지도 약해지고 있다. 취임할 때만 해도 렌치 총리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컸다. 그는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공공자산 매각과 강도 높은 민영화 등으로 경제 개혁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렌치 총리가 소속된 중도좌파 민주당과 노동계의 거센 반발로 경제 개혁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시행한 은행 스트레스테스트(자산건전성 평가)에서는 이탈리아 은행들이 대거 낙제 판정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렌치 총리에 대한 시장 안팎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렌치 총리가 공약으로 내세운 선거법 행정법 노동시장 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이탈리아의 경제 개혁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경기 회복 전망까지 어두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