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그럴거면 노동시장개혁 왜 하나
요즘 산업현장 노사는 정부의 노동시장개혁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책 하나하나에 많은 사업장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책 책임자들이 내뱉는 발언 하나하나에 의해 현장이 출렁인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정규직 과보호로 인해 기업이 겁이 나서 사람을 못 뽑는다. 노동시장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시장개혁의 주요 타깃이 대기업 정규직이란 얘기다. 그러자 노동계가 발끈했다. “정규직이 무슨 과보호를 받고 있냐”는 것이다.

해고완화 법제는 신중히 해야

박근혜 대통령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 격차, 노동시장의 경직성, 일부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 등이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애물”이라고 지적해 최 부총리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평균 연봉 1억원에 달하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매년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모습을 보아온 국민 대부분은 정규직 과보호 해소에 대한 필요성을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해고와 임금 유연화문제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해고문제는 노동계 전체를 건드릴 수 있는 예민한 이슈다. 자칫 잘못하다간 노동시장개혁을 위해 진짜 필요한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정책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에 필요한 정책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추진하다간 하나도 관철시키지 못할 수 있다. 특히 경제와 고용을 위해 정책의 실효성보다 명분과 이데올로기를 먼저 따지는 우리의 노사현실에서는 그렇다.

임금체계개편 문제도 20년이 넘을 정도로 해묵은 과제다. 집단파업 등을 통해 갖가지 수당을 얻어내며 왜곡시켜온 임금체계를 정부가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정책들을 정부가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노사갈등만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주 노동시장개혁 세미나에서 다소 구체적인 노동시장 유연화정책 방향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장관은 “기간제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 중장년층의 파견허용 대상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방향에 핵심 내용이 빠져 있는 것 같아 아쉬운 감이 든다. 이미 독일 일본 미국 영국 등 제조업 강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파견 대상 전면 확대와 기간 폐지 등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은 포함돼 있지 않다. 아마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과 해법을 잘못 진단한 데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진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성장동력이 활력을 잃고 고용탄력성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며 정규직 중심의 인력운영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여기에다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제전쟁이 치열해지고 기업 간 지급능력에 차이가 나면서 나라마다 기업들의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1960년대 사회연대임금을 채택한 스웨덴 노사가 1980년대 이후 이를 포기한 것은 이런 경제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일본 독일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파견 대상을 제조업까지 전면 확대하고 사용기간을 잇따라 폐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금 정부가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다고 난리다. 노동개혁을 했다는 생색내기보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했으면 한다.

윤기설 좋은일터연구소장 노동전문기자·경제博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