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열전] 하루 5건씩 출원…아모레-LG생건 '상표권 전쟁'
한국에서 상표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은 어디일까. 언뜻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정답은 화장품업체 아모레퍼시픽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이 보유한 상표권은 지난 9월 말 기준 9354건으로 롯데제과(7911건)와 삼성전자(6517건)를 앞섰다. 아모레퍼시픽의 라이벌인 LG생활건강이 5823건으로 4위를 기록했다.

[맞수 열전] 하루 5건씩 출원…아모레-LG생건 '상표권 전쟁'
아모레퍼시픽은 업계에서 ‘상표 괴물’이라 불릴 만큼 상표권 관리에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품 상표인 ‘태평양’(1959년 3월21일 등록)을 비롯해 오랫동안 상표권 최다 보유 기업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이 상표권 출원(등록 신청)을 부쩍 늘리면서 최근 두 기업 간에 상표권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 3분기까지 아모레퍼시픽이 출원한 상표는 3125건, LG생활건강은 3155건으로 LG생활건강이 30건 많다. 평균으로 따지면 두 기업 모두 매일 4.8건 정도씩 상표를 출원하고 있다.

나달수 아모레퍼시픽 특허팀장은 “화장품은 제품이 다양하고 수명이 짧은 업종 특성상 상표권을 다양하게 확보해 둬야 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상표권은 등록일로부터 3년 안에 쓰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된다. 그러나 두 회사는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비해 온갖 이름을 선점해 둔다. 올 들어 아모레퍼시픽이 등록을 마친 상표들을 보면 ‘여우주연상’ ‘빛의 여자’ ‘투명미인’ ‘루미나리에’ 등 미(美)와 광채를 연상시키는 것부터 ‘밤안개’ ‘선녀’ ‘추억의 계절’ ‘솜사탕’ ‘스파르타’처럼 어디에 쓸지 궁금해지는 특이한 이름도 있다.

LG생활건강도 ‘아득한 케이프타운 하늘’ ‘보랏빛향기의 나파밸리’ ‘따뜻한 브루노의 풍경’ 등 감성적인 이름부터 ‘수분폭탄’ ‘발그레한 운석’ ‘죽염여신’ 등 재기발랄한 상표를 대거 등록했다. ‘에로스’ ‘스릴 미(Thrill me)’처럼 야릇한 상표도 있다.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이다 보니 경쟁업체를 견제하기 위한 기싸움도 치열하다. 아모레퍼시픽이 일반 제품명으로 통용되는 ‘비비쿠션’을 상표 출원하자 LG생활건강은 이의신청을 내 출원을 취소시킨 일도 있다. LG생활건강 제품인 ‘케어존 젤스킨 트리트먼트’ 등의 상표권에 대해서는 아모레퍼시픽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K뷰티’ 열풍으로 국내 화장품 업체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상표권 관리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송준실 LG생활건강 특허팀장은 “과거엔 국내에만 등록하면 됐지만 요즘은 중국과 동남아를 반드시 포함시키고 10~30개국에 동시 출원하는 게 기본”이라며 “해외 선점 여부까지 신경써야 해 업무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달 1일 기존 지식재산팀을 지식재산부문으로 승격하고, 특허팀과 상표팀으로 세분화했다. 이 회사의 나달수 팀장은 “로레알, 에스티로더 같은 글로벌 기업과도 지식재산권 분쟁 소지가 높아지는 만큼 전문성을 한층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