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암흑기…삼성 출신도 갈 곳 없다
국내 대형 헤드헌팅 업체의 파트너인 김모 컨설턴트는 요즘 책상에 쌓인 이력서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작년보다 새 일자리를 찾는 퇴직 임원은 50% 이상 늘었는데 대기업 임원 출신을 찾는 기업은 오히려 절반 이하로 줄어서다.

전문 기술을 보유한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 외에 재무 마케팅(수출) 출신 임원을 찾는 곳은 거의 없다.

김 컨설턴트는 “작년만 해도 삼성이나 LG 퇴임 임원에게 우리가 먼저 전화해 자리를 추천했는데 올해는 퇴직 임원들이 이력서를 들고와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임원으로 3년가량 근무하다 최근 그만둔 이모씨는 “3개월 전부터 알음알음 새 직장을 알아보다가 실패해 최근 전문 인력관리 업체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퇴직 임원들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고 전했다. 급여 눈높이를 확 낮춰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헤드헌팅 업계는 조기 퇴직자 증가로 임원 재취업 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정기 인사가 끝난 대기업에서 40대 중후반이나 50대 초반에 퇴직한 임원이 적지 않다. 반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대기업 퇴직 임원을 찾는 중소기업은 크게 줄며 수급 불일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8개 대기업과 113개 중소기업을 설문한 결과 대기업 임원의 평균 재직 기간은 중소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겉은 화려하지만 직업의 안정성이 그만큼 떨어져 상당수 현직 임원조차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실적 압박 강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안성호 삼정KPMG 컨설팅부문 팀장은 “기업들이 성과(실적) 평가를 강화하면서 임원의 근무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며 “대기업 임원을 더 이상 ‘기업의 별’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인설/최진석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