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창작발레
서울발레시어터(SBT)는 오는 18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창작발레 ‘RAGE’를 공연한다. 창작발레는 스토리 안무 세트 등 작품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 ‘라이선스 발레’는 유명 발레작품에 로열티와 의상, 조명디자인 등 각종 비용을 지급하고 공연하는 것이다. 안무동작 순서를 지도받는 비용까지 줘야 한다. 까다로운 디자이너는 본인이 원하는 재료를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수억원씩 하는 외국 안무가의 작품을 비싼 비용을 내고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염려가 된다. 공인된 유명작품을 볼 수 있고 단원들에게는 해외작품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외국 것을 따라하고 답습하는 것에 익숙해져 독창적 예술 활동을 하는 것과 멀어질 수 있어서다.

1970~1980년대에 사람들이 일본 전자제품을 얼마나 갖고 싶어 했고 부러워했는지 기억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전자제품은 일본을 누르고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만약 우리 기술로 새로운 제품들을 개발하지 않고 인기 상품을 계속 수입해 판매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SBT는 어려운 국내 창작발레 환경에서 지난 19년간 100여편의 발레작품을 창작했다. 미국 발레단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연하는 RAGE는 필자의 남편이자 SBT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파격적 안무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정부가 공연예술 분야의 창작의욕을 높이기 위해 ‘창작팩토리’란 이름으로 2008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극과 뮤지컬을 대상으로 지원하다 2011년 오페라, 2012년 발레까지 확대했다. 일회성 지원이 아닌 창작부터 유통까지 공연제작 전 과정에서 경쟁을 통해 단계별로 지원한다.

SBT는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제작비 충당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다. 늘 부족한 예산으로 창작하다 보니 의상, 세트 등에서 안무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예산 절약하는 것에 더 고민해야 했다. 이번 정부 지원으로 창작모던 발레 작품을 낼 수 있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이번 공연은 순수 민간발레단인 SBT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매우 중요한 공연이 될 것 같다. K팝 등 한류에 이어 우리 힘으로 창작된 예술작품이 전 세계에 수출, 공연되는 그 날을 꿈꿔 본다.

김인희 <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aram586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