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제 식구 먼저 챙기는 펀드 판매사
‘펀드 판매 50% 룰’이 도입된 것은 작년 4월이다. 펀드를 파는 증권회사 은행 보험회사 등이 같은 계열 자산운용사의 펀드 상품을 집중적으로 취급하는 소위 ‘몰아주기’를 근절시키겠다는 의도였다. 펀드 판매 총액에서 계열사 상품 판매액이 절반을 넘으면 ‘불건전 영업행위’를 한 것으로 규정했다. 최고 5000만원의 과태료 등의 제재도 받도록 했다.

시행 첫해인 작년엔 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둔 41개 판매사가 ‘50% 룰’을 모두 준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상한 현상도 나타난다. 상당수 금융회사는 작년 3분기까지 계열 펀드를 집중적으로 팔았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계열사 상품 판매를 한시적으로 중단하거나 타사 상품을 대거 팔면서 50% 규제를 피해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현상은 올 들어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3분기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50%를 넘는 판매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영증권의 계열 펀드 비중은 1분기만 해도 46.4%였는데 2분기 71.5%, 3분기 75.4%로 급증했다. 메리츠종금증권 KB투자증권 등의 계열사 의존도는 3분기 들어 50%를 웃돌았다. 연말에 집중적인 관리를 한다면 규제를 피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점을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제 식구 상품’을 먼저 챙기는 관행은 수익률 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자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금융투자협회에 공시된 국내 주식형 펀드의 지난 1년간 수익률(10월 말 기준)을 분석하면 계열사 펀드와 비계열사 펀드를 모두 판매한 41개 판매사 중 33곳(80.5%)에서 비계열사 펀드의 수익률이 우월했다. 예컨대 한 대형 증권사의 계열 펀드 수익률은 평균 -5.48%인 반면 비계열 펀드는 9.90%를 기록 중이다.

소비자는 증권회사나 은행 창구에서 대개 “좋은 펀드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다. 좋은 펀드란 수익률이 높은 펀드를 의미한다. 그러나 판매사들은 ‘계열사 펀드’를 먼저 팔 기회로 여기는 것 같다. 금융회사들은 말로만 소비자 최우선 경영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조재길 증권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