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9일 5.43% 급락한 것은 중국 증시가 여전히 ‘정책시’(政策市·정책에 의존하는 시장)임을 확인해준다는 지적이다.

중국 당국은 RP(환매조건부 채권) 매매로 단기자금을 조달, 증시에 투자하는 금융사의 투기 행태를 막는 조치를 전날 저녁 발표한 데 이어 이날 증권사 등에 단기 과열을 막기 위한 창구 지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등세를 타는 증시가 실물경제로 흘러갈 자금까지 빨아들이는 부작용을 막으려는 당국의 조치가 결과적으로 증시를 급락시켰다.
증시 과열 억제나선 중국…주식 단기자금줄 차단
○RP 규제는 정책의 ‘블랙스완’

지난 8일 3년8개월 만에 3000을 뚫은 상하이종합지수가 하루 만인 9일 2856.27로 내려앉았다. 전문가들은 8일 장 마감 후 중국증권등기결산(한국의 예탁결제원)이 발표한 RP 매매 규제 탓으로 돌렸다. 장내에서 이뤄지는 RP 매매 채권 대상을 신용등급이 AAA인 채권이나 발행기관 신용등급이 AA인 채권으로 제한한 것이다. 하이퉁증권은 RP 매매로 조달할 수 있는 4500억위안의 단기자금이 묶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언론은 이번 규제 조치를 ‘정책의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태)이라며 채권시장 금리가 뛰는 것은 물론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이 증시 속도 조절에 나서는 신호는 이미 5일 감지됐다. 이날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대변인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집을 팔고 주식을 사거나 신용으로 주식에 투자하라는 식의 시장 풍문에 오도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9일 증권사 등에 과열 투자를 억제하라고 창구 지도한 것으로 전해진 것도 중국 당국의 속도 조절 의지를 보여준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주도적으로 증시를 조정할 필요는 없다는 글을 올렸다. 중국 정부 내에서도 속도 조절을 놓고 이견이 있음을 시사한다.

○증시로 쏠리는 시중 자금

중국 증시는 지난 7월 이후 최근까지 40% 이상 올랐다. 특히 지난달 21일 2년4개월 만의 금리 인하가 결정된 이후 급등세를 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시중자금이 과도하게 증시로 쏠리고 있다는 데 있다. 상하이 증시의 이날 거래대금은 7934억위안에 달했다. 선전 증시까지 합치면 1조2665억위안에 이른다. 단일 국가의 증시 하루 거래대금으로는 사상 최고다. 1990년대 중반 중국 증시 연간 거래대금 수준이다. 하루 거래대금은 7월까지만 해도 2000억위안에 달했지만 반년도 안 돼 여섯 배로 불어났다.

중국 언론은 은행예금은 물론 중국 최대 머니마켓펀드(MMF)인 위어바오 등 각종 재테크 상품에서 이탈한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금리가 떨어지지 않은 것도 주식 투자를 위한 자금 수요가 늘어나서다.

이날 은행 간 단기자금(만기 1개월짜리) 금리는 4.3%로, 금리 인하 전보다 오히려 올랐다. 도이치뱅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증시 급등기에 금리 인하는 되레 실물경제의 유동성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 둔화로 금리 인하를 단행한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이 실물경제로 흘러가야 할 시중 자금까지 증시로 빨려들어가자 딜레마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증시 속도 조절에 나선 배경이다. 후강퉁(水+扈港通·상하이와 홍콩증시 교차 매매 허용) 개시로 중국 증시에 직접투자하게 된 한국 투자자들도 중국 증시의 정책리스크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RP

repurchase agreement. 환매조건부 채권. 일정 기간(1~182일)이 지난 뒤 다시 매입하는 조건으로 채권을 매도함으로써 수요자가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거래 방식.

오광진 중국전문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