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땅콩 리턴’ 파문을 일으킨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사진)이 9일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부사장·등기이사 자리와 다른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유지하기로 했다.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이날 오후 조양호 회장이 모나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돌아온 직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조 부사장의 사의를 전격 수용했다고 밝혔다. 조 부사장은 임원회의에서 “본의 아니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고객과 국민들께 죄송스러우며, 저로 인해 상처를 입으신 분이 있다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한다”며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사의를 밝혔다.

조 부사장은 이에 따라 현재 맡고 있는 대한항공 기내서비스·호텔사업부문 총괄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그러나 부사장직과 사내 등기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등의 대표이사직도 계속 맡기로 했다.

조 회장이 조 부사장의 사의를 수용한 건 이번 사건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서둘러 진화하지 않을 경우 자칫 그룹 전체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앞서 조 부사장은 지난 5일 뉴욕에서 대한항공 여객기 승무원이 땅콩 등 견과류를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째 서비스했다는 이유로 질책하며, 이륙을 위해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려 기내 서비스 책임자인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인터넷 포털에선 조 부사장을 성토하는 글이 빗발쳤다. 또 국토교통부는 8일 조 부사장의 관련 법률 위반 여부를 가리는 진상 조사에 착수했고, 정치권에서도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항공은 8일 사과문을 내놨으나 “조 부사장의 조치는 기내 서비스와 안전을 점검하는 임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더 키웠다.

조 부사장이 보직에서 물러났지만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이날 보직 사퇴에 대해서도 “빗발치는 외부 비난을 잠시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직만 내놓았을 뿐 부사장과 등기이사직은 유지하기로 해 언제든 경영에 복귀할 여지를 남겨 뒀다는 점에서다.

한편 국토부 관계자는 “조 부사장의 사퇴와 별개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참여연대는 조 부사장을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조 부사장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여전하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