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조기 大選 '도박'…다시 유로존 '태풍의 눈'으로
유럽 재정위기를 촉발했던 그리스가 다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조기 대통령 선거 시행이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집권으로 이어져 지금까지의 개혁정책이 무산될 가능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개혁정책이 중단되면 투자자의 이탈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공포가 또다시 유로존을 덮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스 불안에 요동치는 금융 시장

안도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9일(현지시간) 내년 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당겨 오는 17일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추진했던 구제금융의 연내 졸업이 지난 8일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에서 무산되자 마지막 협상을 앞두고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 시장은 요동쳤다. 이번 대선 결과가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는 시리자의 집권으로 이어지면 재정위기 이후 추진됐던 개혁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그리스 증시의 대표 지수인 AES는 전날 대비 12.8% 폭락한 902.84로 마감했다. 1987년 이후 27년 만의 최대 낙폭이다. 3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76bp(1bp=0.01%포인트) 급등한 연 8.23%를 기록하며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연 8.16%)을 넘어섰다. 그리스의 단기 부채상환 능력을 의심한 투자자들이 3년물을 던지면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것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다른 나라의 주식시장 역시 2~3% 떨어졌다. 10일에도 그리스 국채 수익률은 급등하고 증시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그리스는 대통령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의회 정원(300명)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대통령이 선출된다. 1·2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3차 투표에서 정원의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당선자를 뽑는다. 3차에서도 당선자가 없으면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으로 이어진다. 현재 집권 여당의 의석 수는 155석이다. FT는 호의적인 야당의 표까지 합쳐도 지지표는 3차 투표 당선 확정표인 180표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조기총선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그리스 대선이 시리자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시리자는 재정위기 당시 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은 2450억유로의 구제금융 조건이 불평등하다며 채무 재조정을 주장하고 있다.

◆시리자 집권, 유로존 탈퇴로 이어지나

집권 여당은 재정위기 이후 연금 삭감, 부가가치세 인상 등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해 2009년 9.5%였던 실업률은 2012년 24.2%로 치솟았다. 구조조정에 대한 그리스 국민의 피로감은 정부 지출 확대와 연금 삭감 반대를 외치는 시리자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2009년 총선에서 4.6%에 불과했던 시리자의 지지율은 올해 EU 의회 선거에선 26.6%를 기록해 제1정당으로 올라섰다. 최근 시행된 여론조사에서도 시리자 지지율은 집권당을 3~5%포인트 앞서고 있다.

FT는 “이번 조기 대선으로 아직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그리스(175%)의 개혁이 멈출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찰스 로버트슨 르네상스캐피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 문제는 앞으로 6주 동안 글로벌 증시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시리자가 집권하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우려가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