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9일(현지시간) 공개한 중앙정보국(CIA)의 테러용의자 고문 실태 보고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고문 수법이 예상보다 훨씬 잔혹해 관련 테러단체나 극렬주의자의 보복 테러 우려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보고서 공개를 주도한 민주당과 ‘고문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공화당 간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민주당)이 공개한 CIA 고문보고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비밀 시설에 수감된 알카에다 대원들에게 자행된 고문 수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30분 이상 물고문을 하거나, 1명에게 183번의 물고문을 가한 경우도 있었다. 7일 동안 잠 안 재우기, 항문으로 물을 주입하는 행위, 매달기, 좁은 공간에 집어넣기, 모든 체모를 깎아내고 옷을 벗겨 흰 방에 가두거나 빗자루 손잡이를 성고문 도구로 쓰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러시안룰렛’과 전동드릴까지 동원됐다. 보고서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보고된 내용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야만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파인스타인 정보위원장은 “CIA의 고문은 법적 테두리를 넘어선 것일 뿐 아니라 별로 효과적이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과 조지 W 부시 정부 당시 각료, CIA 전직 수장들은 “고문은 테러범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어려운 시기에 많은 올바른 일을 했지만 일부 행동(CIA 고문)은 우리의 가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 사안이 국제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있다. 벤 에머슨 유엔 대(對)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미 정부는 CIA 관련 책임자를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 법무부는 증거가 부족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