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자가 책 속의 도안을 따라 색칠하는 컬러링 북을 완성하고 있다. 클 출판사 제공
한 독자가 책 속의 도안을 따라 색칠하는 컬러링 북을 완성하고 있다. 클 출판사 제공
서울 대조동에 있는 클 출판사는 지난 5월 우연히 프랑스 출판가 소식 하나를 접했다. 책 속의 도안을 따라 색칠하는 ‘컬러링 북(coloring book)’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출판사는 그중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본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조해너 배스포드의《비밀의 정원》판권을 사들여 출간하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 8월 출간된《비밀의 정원》은 지금까지 20만부 가까이 팔리며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술 분야 1~10위가 DIY북

별다른 설명 없이 도안만 그려져 있는 컬러링북이 2014년 출판가를 휩쓸었다. 색칠을 통한 ‘안티-스트레스’라는 콘셉트가 국내 출판계에 컬러링 북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평가다. 색칠뿐 아니라 손글씨,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인 캘리그래피 등으로 관심이 확산되는 추세다. 직접 칠하거나 쓴 것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유하는 독자가 많아져 이른바 책에 색을 칠하고 글씨를 쓰며 즐기는 ‘DIY(do it yourself)북’의 인기가 지속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셀러(12월3일~12월9일) 예술 순위를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가 컬러링 북, 손글씨 서적이다.《비밀의 정원》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네이처》《블링블링 일러스트 컬러링북》(솜씨 펴냄),《아트 테라피》(북샵일공칠 펴냄) 등이 상위권이다. 지난해 비슷한 기간(12월4일~12월10일) 예술 베스트셀러가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손철주의 《사람 보는 눈》 등 순수 예술서적 위주였던 것에 비하면 뚜렷한 변화다.

박정우 클 출판사 마케팅팀장은 비밀의 정원이 큰 인기를 끈 이유로 “무언가에 몰입해 스트레스를 풀고도 하나의 작품이 나온다는 점”을 꼽았다. 여기에 자신이 색칠한 그림을 SNS에 올리면서 남에게 자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결과물에 자극받는 것이 컬러링 북을 확산시켰다는 설명이다.

◆손글씨·캘리그래피도 인기

손글씨나 캘리그래피 관련 서적도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뭔가 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게 한 분야다. 그래픽 디자이너 공병각 씨가 지은 《나도 손글씨 잘쓰면 정말 좋겠다》와 《손글씨 잘 써서 좋겠다》(양문 펴냄)가 예술 분야 4위와 11위이며, 캘리그래퍼 박효지의 《캘리그라피 쉽게 배우기》(단한권의책 펴냄)도 14위다.

컬러링 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마이클 오마라 출판사의《아트 테라피》와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를 출간한 지식인하우스의 안종남 대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책값과 색연필 몇 개면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DIY북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박종진 을지로 만년필연구소장은 “한글 서체는 로마자보다 다양하고 대부분의 획이 직선이라 사람들이 손글씨나 캘리그래피를 쉽게 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DIY북이 인기를 끌면서 색연필과 만년필 매출도 덩달아 늘고 있다. 옥션에 따르면 성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용 색칠놀이 상품 매출이 최근 한 달간(11월9일~12월8일) 전년 동기 대비 50% 늘었다. 색연필과 물감, 펜 등 색칠 문구 제품 매출은 같은 기간 190% 늘었으며 만년필은 20%, 캘리그래피 펜 등 정교한 작업을 위한 문구 매출은 200% 증가했다. 파버카스텔이나 스태들러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색연필 세트는 국내 판매분이 매진돼 추가 수입을 기다리고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