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방영 씨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월명유자’ 앞에 서 있다.
박방영 씨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월명유자’ 앞에 서 있다.
한국화가 박방영 씨(57)는 10대부터 동양화 운필법의 기본이 되는 서예를 체득해 ‘추사 선생’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글씨에 능하다. 1980년대 사회 문제를 다루는 그룹 ‘난지도’ 를 통해 실험적인 설치 작업을 선보였던 그는 뉴욕 유학 후 동양적인 회화의 세계로 방향을 틀어 꽃과 사람, 자연을 소재로 ‘상형산수’에 몰두해왔다.

문자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형산수’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박씨가 오는 16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모검(毛劍)’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전북 부안 월명암을 보고 느낀 감상을 표현한 기행 회화, 파주 작업실 근처를 답사한 그림 등 5~7m 대작 6점을 걸었다.

전통 한지 위에 유적지의 숨소리와 화려한 원색의 꽃, 인간의 움직임을 극적으로 잡아내 온 그의 그림에서는 원시적인 생동감과 동양적 정취가 뿜어져 나온다. 붓글씨 솜씨를 발휘해 그림 곳곳에 써놓은 개성 있는 한자들도 매력적이다.

모필로 검술을 하듯 그린다는 박씨는 “내면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감성과 힘으로 원시적이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둔다”고 말했다.

“상형산수는 실물 그대로 묘사하는 전통 산수화와 달리 문자를 접목한 사의적(寫意的) 화풍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 철학서를 탐독한 것이 제 그림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유로운 운필로 시서화 일치를 주장했던 조선시대 문인화의 세계를 견지하면서도 민화에서의 천진한 파격과 한자에서의 해맑은 감성을 화면에 담아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의 ‘상형산수’는 형상으로 도를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정신이 담겨 있다. 그림 속에 사람과 꽃, 문자를 다채롭게 그려 넣어 마치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의 상형산수화 ‘물타(物打·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깨뜨린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붓놀림의 숙련성과 한자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통해 예술적 감수성과 역량을 보여준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