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인들의 경제인식, 투자빙하기 부른다
지난 2일 밤 2015년 예산안과 부수 세법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12년 만에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통과됐다. 예산안은 새해 시작 30일 전에 통과되도록 법이 정하고 있는데 매년 여야 간 정쟁으로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하다 이번에 시한 내에 통과된 것이다. 이번에는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정부 제출 원안이 통과되도록 규정한 국회선진화법이 처음 적용됨으로써 여야는 서둘러 합의안을 제출해 통과시켰다. 정부 원안대로 통과되면 국회논의 과정에서 어렵사리 끼워 넣은 지역구 예산이 빠지게 된다는, 국회의원들의 지역이기주의도 서둘러 합의안을 도출하게 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그동안 세월호특별법 등 여야 간 정쟁에 따른 국회공전 장기화로 예산안을 제대로 심의하지 못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겠지만 법정시한을 지켰다는 자체는 예산안 통과지연에 따른 경제사회적 불확실성 해소 등 의의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통과된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은 한국 정치인들의 경제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다. 흔히 기업가는 일류, 관료는 이류, 정치인은 삼류라는 말이 있지만 도무지 경제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의 장기침체 우려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법인세를 인상하는 세법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올해까지 7년 동안 연평균 3.2%의 저성장을 지속하고 지난해부터는 소비자물가상승률도 1%대로 추락해 장기침체와 장기디플레이션으로 추락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장기정체론이 과제로 등장하면서 마이너스 실질금리, 대규모 인프라투자 등 전향적인 경기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을 급속도로 따라가고 있어 규제혁파, 법인세 인하 등 기업투자 촉진을 위해 사력을 다해도 추락하는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세법은 1~2%인 투자고용창출세액공제를 아예 폐지하고, 3~4%인 대기업 연구개발 세액공제는 2~3%로 낮췄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소득환류세제로 법인세를 3%포인트 내외 인상한 것과 같은 결과가 발생할 전망이다. 합해서 대략 5~6%포인트의 법인세 인상효과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경기 장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국면에서 법인세를 인상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 각국은 장기정체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3개국이 단일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는 등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국도 투자고용창출세액공제, 연구개발세액공제를 확대하고 법인세를 인하해야 할 지경인데 오히려 그 반대로 나가고 있는 셈이니 앞으로 다가올 투자빙하기와 그 결과 초래될 서민들의 일자리 불안은 생각만 해도 두렵다.

투자고용창출세액공제를 폐지하고 연구개발세액공제를 줄여서 추가로 들어올 것으로 추산되는 법인세 5000억원 정도를 누리과정 보육예산으로 배정한다고 한다. 예산이 없어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하지 못하겠다는 무상급식은 그대로 하면서 대신 예산이 없게 된 무상보육은 결국 법인세에서 더 거둬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법인세 인상효과에도 불구하고 기업투자가 위축되지 않고 법인세가 제대로 들어올 때 가능한 얘기다. 기업투자가 위축되면 법인세가 덜 걷힐 것은 불문가지다. 그 경우 무슨 돈으로 지원할 것이며 내년에는 가까스로 넘어가더라도 2016년에는 당장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법인세를 인상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무상복지의 합리적인 출구전략 마련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오정근 < 건국대 특임교수·韓經硏 초빙연구위원 joh@k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