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배려의 힘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면서 보면 좌회전, 우회전하는 차들 중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자동차가 의외로 많다. 비보호 좌회전이 허용되는 네거리에서 좌회전하려는 차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으면 직행하는 줄 알고 뒤따라오던 차는 당황스러워진다.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은 운전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들에 앞차의 진로 변경을 미리 알려 예측 가능한 안전운전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서울 시내가 보행자 중심 도시로 점차 변하면서 네거리마다 그리고 필요한 곳에 횡단보도가 잘 정비돼 있다. 그리고 횡단보도 상에 우측통행을 알려주는 화살표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번잡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측통행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보도에서 우측통행을 원칙으로 정한 이유는 보행자들이 서로 부딪치는 불편을 없애고 편안하고 원활하게 건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운전하거나 보행할 때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운전자는 손가락으로 방향지시등을 켜고, 보행자는 횡단보도에서 우측으로 몇 발자국만 옮기면 된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교통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공중도덕을 철저히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한 탓이라고 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교통질서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배우지 않았을 리는 없다. 바쁜 도시생활에서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거나, 나만 편하면 되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통 큰 이기주의’적 생활태도에서 오는 무관심의 발로는 아닐까.

남을 배려하는 문화와 행동이 자리잡아야만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다. 한 일화다. 간디가 여행을 가기 위해 급하게 열차를 타다가 한쪽 신발이 벗겨져 플랫폼에 떨어졌는데 그것을 집어 올릴 틈도 없이 바로 열차가 출발해 버렸다. 그러자 간디는 남은 신발 한 짝을 벗어 플랫폼으로 던져버렸다. 옆 사람이 이유를 물었더니, “신발을 습득한 사람이 한쪽만 있으면 쓰레기통에 버리겠지만 양쪽 신발을 줍게 된다면 온전하게 신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대인들에게 간디와 같은 배려까지는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각박한 일상생활 속 작은 배려가 사회를 변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재후 <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