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440쪽 / 1만7000원
《왕의 한의학》은 이 원장이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왕들의 질병과 치료 과정을 통해 조선의 사회와 문화, 사상, 역사 연구에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인문의학서다. 저자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국가적인 관리를 받았던 왕의 몸은 당대의 시대정신과 과학, 제도와 정치가 응축된 조선 역사의 거울”이라며 이를 한의학으로 연구하는 것을 ‘왕의 한의학’이라고 이름했다.
눈앞에서 아버지 사도세자 죽음을 지켜본 정조는 평생 그 트라우마로 인한 화증(火症)에 시달렸다. 대표적인 질병이 종기였다. 정조는 재위 24년째이던 1800년 6월14일 등에 종기가 나 14일 만에 사망했다. 평생 인삼을 입에 달고 살며 83세까지 장수했던 영조와 달리 정조는 평소 인삼을 멀리했다. 하지만 의관과 대신들은 종기를 없애려면 열을 밀어내야 한다며 인삼이 든 경옥고를 복용하게 했고 정조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반면 정조 독살설의 뿌리가 된 ‘연훈방’은 유해물질인 수은을 태워 그 연기를 환부에 쏘이는 처방임에는 틀림없지만 사흘간의 치료로는 치명적인 수은중독에 이르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따라서 정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은 종기가 분명하며 치료 기록 어디에도 독살설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왕의 건강이 당대의 정치, 정책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 세종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성군이었지만 안질, 임질, 소갈(당뇨병), 풍습(관절염) 등 온갖 질환으로 고생했다. 저자는 세종의 이런 질환은 조선 왕조의 성리학적 통치시스템, 숙청과 권력투쟁으로 얼룩진 건국 역사의 산물이라고 해석한다. 선조는 사림과의 신경전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역사의 물줄기가 왕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고, 왕의 건강이 역사를 바꿨다는 것이다.
책에는 조선 태종부터 고종황제까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겨 있다. 저자는 조선의 최장수 왕인 영조에게 건강비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영조는 어릴 때부터 평생 한약을 달고 산 약골이었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알고 질병에 대비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