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파일럿 직업윤리
2003년 5월13일 낮 12시59분께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리에 F5 전투기가 추락했다. 당시 조종사 김모 대위(공사 44기)는 탈출하지 못한 채 숨졌다. 이륙 직후 엔진 이상을 발견한 김 대위는 비상탈출하라는 관제탑의 지시를 받았으나 ‘민가가 있다’며 7분간이나 야산 쪽으로 비행기를 몰다 결국 산화했다. 우리 전투기 조종사들이 탈출하지 않고 도시와 민가를 피해 비행하다 사망한 사건이 기억에만 서너 번이다. 외국의 경우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금이라도 전투기가 이상하면 곧바로 ‘긴급탈출(ejection)’ 버튼을 누른다. 그것이 규정이다. 규정 이상으로 더 엄격한 자기 규율이 있는 집단이 한국 공군 파일럿이다.

공군 조종사 가운데는 1971년 영화 ‘빨간마후라’를 보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조종사들이 가장 우수하다는 얘기가 있다. 일반대학으로 치면 72~75학번쯤 된다. 이들이 몰던 F5 전투기 중 일부는 레이더도 없었다. 현재는 100마일 떨어진 적기도 포착하는 F15가 주력기다. 지금은 민항기 조종사를 자체 양성도 하지만 초창기 국적기 파일럿은 대부분 공군 조종사 출신들이었다. C130 등 수송기 조종사들은 금방 적응했지만, 전투기 파일럿은 전환 교육을 받아야 했다. 조종능력과 위험에 대처하는 순발력 등이 우수해 항공기 조종 수준은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투기 파일럿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교육 군기가 세다. 조종특기로 임관했다가 훈련이 너무 힘들어 중도 포기하는 장교도 적지 않다. 그 군기는 한번 까딱하면 추락할 수 있는 전투기 속에서, 스스로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매뉴얼을 완벽히 암기하고 규정을 기계적으로 지키도록 반복 훈련하는 것이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모든 것이 규정대로 가야 정상인 것이다.

대한항공 ‘회항 사건’에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바로 기장의 결정이다. 규정을 절대 어길 수 없도록 훈련받아 온 조종사가 활주로로 이동하다 멈추고 다시 돌아오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왜 했을까. 누가 시켜도 긴급상황이 아니면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항공법에는 항공기 승무원에 대한 지휘·감독은 기장이 한다(50조1항)고 규정돼 있다. 스스로 자신의 직업윤리를 지켰어야 했다. 회항은 공항규칙에 어긋나고 항공법에도 저촉되니 비행기를 돌릴 수 없다고 설명했어야 했다. 직업윤리는 어디로 사라졌나. 세월호와 다른 것이 뭔지.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