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마켓인사이트] 업종 1위도 강등 칼날…내년 정유·화학 줄하향 우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4일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신용등급(현재 AA)을 한 단계 낮췄다. 2000년 이후 14년 만의 강등이다. 앞서 지난 6월에는 한국기업평가가 국내 최대 철강업체인 포스코(AA+) 신용등급을 20년 만에 내렸다. 업종 최상위 기업들조차 경기침체와 실적 부진에 따른 신용등급 강등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재계는 잇따른 신용등급 하락이 자금조달 비용 증가 등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긴장하고 있다.

조선·건설·철강 ‘우수수’

2011년 한 해 동안 6개에 불과했던 등급 하락 기업 수(한국신용평가 기준)는 2012년 15개, 2013년 24개, 올해 35개로 급증하는 추세다. 경기침체 등 여파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반면 한국신용평가가 올 들어 신용등급을 올린 기업은 15개에 그쳤다. 이에 따라 등급이 오른 기업 수를 떨어진 기업 수로 나눈 ‘등급 상하향 배율’은 0.43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0.06)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1.16)보다 낮은 수준이다.

주요 타깃은 국내외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조선·철강·항공·해운업종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작년 한진중공업을 시작으로 이번 현대중공업까지 평가 대상 조선업체 4곳의 등급(등급전망 포함)을 모조리 하향 조정했다. 건설업은 7곳을 강등했는데, 10대 건설사 중 대림산업(현재 A+), 대우건설(A), 롯데건설(A), 한화건설(A-) 등 4곳이 포함됐다. 이로써 지난 2년간 신용등급이 떨어진 건설업체는 모두 14곳으로 늘었다. 전체 평가 대상 20곳의 70%에 달한다.

철강업계도 우울한 겨울을 맞았다. 이달에만 포스코특수강(AA), 동국제강(A-), 세아베스틸(A+), 유니온스틸(A-), 동부메탈(B-)의 신용등급이 떨어지거나 곧 떨어질 처지(하향검토 대상 등록)에 놓였다.

정유·화학업종 역시 글로벌 경쟁 환경 악화로 강등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양대 정유회사인 SK에너지(AA+)와 GS칼텍스(AA+)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다. 한국신용평가는 삼성그룹 계열 삼성정밀화학(AA-)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용방어 ‘안간힘’ 써보지만

기업들은 신용등급 악화를 방어하기 위해 유상증자나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건전성 개선에 힘쓰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국내 유상증자 금액은 4조627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6167억원 대비 76.8% 급증했다. GS건설(5520억원), 한화케미칼(3526억원), 동국제강(1499억원), KCC건설(1089억원), 한진중공업(1914억원), 포스코플랜텍(717억원) 등이 유상증자를 마쳤다.

두산건설과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한화건설 등은 작년 말 이후 대규모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했다. 현대중공업과 한진해운은 부채비율을 낮추면서 운영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영구채권 발행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대규모 자본 확충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 강등을 피하지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동국제강과 한화건설, 포스코플랜텍 등은 유상증자 완료에도 불구,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실적이 나쁘고 전망도 어둡다는 이유에서다. 증권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전체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제외)은 2010년 7.2%에서 작년 3.8%로 급락했다. 올 들어 9월까지는 4.4%를 나타냈다.

신용평가업계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신용등급 강등 건수가 상승 건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한국신용평가가 신용등급에 ‘부정적’ 전망(2년 내 등급 하락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을 붙인 기업은 28곳으로 ‘긍정적’(12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최종원 삼성증권 연구원은 “공급과잉 등에 놓인 산업은 내년에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내년 회사채 시장의 화두는 중상위 등급 기업의 지속적인 신용등급 하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태호/하헌형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