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재기 > 지난 10월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불명예 사임했던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자민당·앞줄 가운데)이 14일 총선에서 큰 표차로 상대를 누르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도쿄AFP연합뉴스
< 화려한 재기 > 지난 10월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불명예 사임했던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자민당·앞줄 가운데)이 14일 총선에서 큰 표차로 상대를 누르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도쿄AF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14일 중의원 총선거에서 압승했다. 아베 총리는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지면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안보관련법 개정 등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명당까지 포함한 연립 여당 의석 수가 총 의석(475석)의 3분의 2(317석)를 넘기면서 헌법 개정에 나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아베, 선거 3연승 ‘선거의 왕’

NHK에 따르면 15일 오전 1시20분 현재 자민당이 289석, 연립 여당인 공명당 의석을 합할 경우 323석을 얻었다. 모든 상임위원회를 장악하는 데 필요한 의석(266석)은 물론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까지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는 의석(전체의 3분의 2)을 확보했다.

이번 선거는 아베 총리가 지난달 18일 소비세 추가 인상을 1년6개월 미루면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며 중의원을 해산한 데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는 선거운동 기간 ‘경기회복, 이 길밖에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용 증가, 임금 상승 등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강조했다. 아베노믹스에 대해 비판적인 야당과 국민을 향해선 “(성과를) 실감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아베노믹스의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할 사람도 자신뿐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중의원 선거에 이어 지난해 참의원 선거, 이번 중의원 선거까지 자민당의 3연승을 이끌며 ‘선거의 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연립여당 과반 확보’를 선거 승패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지만 이를 훌쩍 뛰어넘는 의석 수를 확보해 당내 주도권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내년 8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무투표’로 재선에 성공해 2018년까지 장기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오는 24일 특별국회를 소집해 아베 총리를 새 총리로 뽑는 등 제3차 아베 정권을 공식 출범시킬 예정이다.

◆평화헌법 개헌 가능성도

아베 총리가 3차 집권에 성공하면서 엔저 흐름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아베노믹스의 행동대장 격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연간 80조엔에 이르는 양적 완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여당 내 신중론이 있었던 법인세 실효세율 인하와 규제 개혁, 지방활성화 특구 지정 등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도 총리 주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등도 속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 정기의회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안보관련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쪽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면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후폭풍’을 겪었지만 이번 압승으로 재차 추진력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이번 총선 공약에서는 헌법 개정과 관련해 ‘발톱’을 숨겼지만 현행 일본국헌법(평화헌법) 9조의 개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헌법 9조는 ‘무력을 분쟁해결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연립 여당이 중의원 3분의 2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개헌 발의도 가능해졌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 스스로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면 우리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며 과거 개헌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내년에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한 담화를 내면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등 한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과 충돌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