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고통에 귀 기울여 마음까지 치료해야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질병체험이야기' 국내 첫 연구 주도 강창우 서울대 독문과 교수
5년간 8개大 다양한 전공자 참여
당뇨병·치매 등 1300여 영상 공개 "검증된 정보로 질병 극복에 도움"
5년간 8개大 다양한 전공자 참여
당뇨병·치매 등 1300여 영상 공개 "검증된 정보로 질병 극복에 도움"
“고 신해철 씨 사건과 같은 의료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선 의료인들이 환자가 겪는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국내 최초로 ‘질병체험이야기’ 연구 결과물을 대중에 공개한 강창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52·사진)는 15일 의료인과 환자 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 교수를 비롯해 고려대 단국대 등 8개 대학의 의학 간호학 컴퓨터공학 어학 전공자 17명이 2009년부터 시작한 이번 연구는 질병이라는 인생의 큰 위기를 마주한 사람들의 생생한 심경과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당뇨병 유방암 위암 우울증 호스피스 치매 등 질병을 겪은 환자와 가족 등 278명을 인터뷰하고 1300여개의 영상을 제작했다.
그동안 수집한 질병체험 정보와 영상은 웹사이트(www.healthstory4u.co.kr)를 통해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했다. 강 교수는 “인터넷에 범람하는 부정확한 질병체험 정보 대신 체계적이고 검증된 정보로 환자와 가족들이 질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어를 전공한 강 교수가 질병체험 연구에 뛰어든 계기는 작은 우연에서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언어학 공부 모임을 진행해 오던 그는 어느 날 박일환 단국대 의대 교수로부터 “환자와의 대화 연구를 위해 공부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 교수는 “의료인들은 언어학자들의 대화 이론이 필요했고, 언어학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결과 2005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 학회가 창설됐다.
2009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질병체험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에 나섰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학문의 사회적·정서적 기여를 위해 2001년 처음 시작한 ‘디펙스(DIPEx) 프로젝트’가 모델이었다. 영국은 현재까지 70여 종류의 질병에 대한 체험이야기를 축적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야심 차게 시작된 연구는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병원을 일일이 찾아가고 환자를 어렵게 설득해 인터뷰 약속을 잡았지만 병세가 갑자기 심해져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환자를 만나고 온 연구원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계 일각에서 제기된 “왜 이 사업이 5년씩이나 걸리는지 의문이다” 등의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논문만 연구 실적으로 인정되는 학계 풍토 탓에 상당수 연구원들이 인터뷰 등에 열정을 쏟고도 연구 실적 부족으로 교수 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직접 환자, 가족들과 대화하며 쌓아나간 치유의 경험은 연구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강 교수는 “인터뷰를 하면 환자와 가족들은 길게는 2시간씩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하소연했다”며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져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번 결과물은 이미 고려대 단국대 등에서 의대생 교육을 위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후속연구 논문이 해외 학술지에 게재됐다. 강 교수는 “의료인들이 질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치료하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국내 최초로 ‘질병체험이야기’ 연구 결과물을 대중에 공개한 강창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52·사진)는 15일 의료인과 환자 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 교수를 비롯해 고려대 단국대 등 8개 대학의 의학 간호학 컴퓨터공학 어학 전공자 17명이 2009년부터 시작한 이번 연구는 질병이라는 인생의 큰 위기를 마주한 사람들의 생생한 심경과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당뇨병 유방암 위암 우울증 호스피스 치매 등 질병을 겪은 환자와 가족 등 278명을 인터뷰하고 1300여개의 영상을 제작했다.
그동안 수집한 질병체험 정보와 영상은 웹사이트(www.healthstory4u.co.kr)를 통해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했다. 강 교수는 “인터넷에 범람하는 부정확한 질병체험 정보 대신 체계적이고 검증된 정보로 환자와 가족들이 질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어를 전공한 강 교수가 질병체험 연구에 뛰어든 계기는 작은 우연에서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언어학 공부 모임을 진행해 오던 그는 어느 날 박일환 단국대 의대 교수로부터 “환자와의 대화 연구를 위해 공부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 교수는 “의료인들은 언어학자들의 대화 이론이 필요했고, 언어학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결과 2005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 학회가 창설됐다.
2009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질병체험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에 나섰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학문의 사회적·정서적 기여를 위해 2001년 처음 시작한 ‘디펙스(DIPEx) 프로젝트’가 모델이었다. 영국은 현재까지 70여 종류의 질병에 대한 체험이야기를 축적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야심 차게 시작된 연구는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병원을 일일이 찾아가고 환자를 어렵게 설득해 인터뷰 약속을 잡았지만 병세가 갑자기 심해져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환자를 만나고 온 연구원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계 일각에서 제기된 “왜 이 사업이 5년씩이나 걸리는지 의문이다” 등의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논문만 연구 실적으로 인정되는 학계 풍토 탓에 상당수 연구원들이 인터뷰 등에 열정을 쏟고도 연구 실적 부족으로 교수 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직접 환자, 가족들과 대화하며 쌓아나간 치유의 경험은 연구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됐다. 강 교수는 “인터뷰를 하면 환자와 가족들은 길게는 2시간씩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하소연했다”며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져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번 결과물은 이미 고려대 단국대 등에서 의대생 교육을 위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후속연구 논문이 해외 학술지에 게재됐다. 강 교수는 “의료인들이 질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치료하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