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간판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추락하고 있다고 한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올 들어 신용등급 상향이 15곳인데 하향은 35곳이나 된다. 상향 기업수를 하향 기업수로 나눈 상하향 배율은 0.43배(한국신용평가 기준)로,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0.06배) 후 가장 낮다. 2010년 13.75배에 비하면 격차가 너무 크다. 더구나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2년 내 등급 하락 가능성)인 기업이 28곳으로 ‘긍정적’ 12곳의 2.3배다. 앞으로도 강등이 상향보다 훨씬 많을 것임을 예고한다.

신용등급 강등은 당장 자금 조달비용을 높이지만, 더 큰 문제는 경제를 견인해온 간판기업들조차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것이란 점이다. 대표 산업 중 하나인 조선은 4대 조선사 모두, 건설은 10대 건설사 중 4곳이 등급 강등의 칼을 맞았다. 좀체 흔들릴 것 같지 않던 포스코가 20년 만에, 현대중공업이 14년 만에 등급이 떨어질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유동성이 나쁜 몇몇 그룹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복합적 위기라는 얘기다.

물론 기업들은 신용등급 방어를 위해 증자, 영구채 발행 등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대규모 자본 확충에도 등급이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쁠 것이란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을 휘감고 있는 위기 요인들이 한두 해에 해소될 단기악재가 아니다. 경기침체와 글로벌 공급과잉에다 셰일오일 혁명, 중국 추격 등이 겹쳐 세계 산업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판이다. 상승-팽창-수축-하강이라는 전통적인 경기사이클도 사라진 지 오래다.

간판 대기업들조차 죽느냐 사느냐의 사활 게임 중인데 정치권과 이익집단들은 너무도 한가하기만 하다. 국회에 간 경제활성화 법안은 함흥차사인데 반시장 법안은 초고속이다. 노조는 기업이 조단위 적자를 내도 파업 으름장이다. 제조업 부진의 돌파구가 돼야 할 서비스업은 온갖 규제와 이익집단의 이기주의 탓에 옴짝달싹 못 한다. 이들 앞에선 구조개혁만이 살길이라는 외침도 공허해진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