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새 한국 사회에선 두 명의 재벌가 딸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 딸 민정씨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첫째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민정씨는 재벌가 딸로는 처음으로 해군 소위로 임관해 관심을 모았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지만, 화제가 된 사회적 배경은 비슷하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반기업 정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모 그룹 임원은 “조 전 부사장 사건은 그렇다 쳐도, 최 회장 딸의 군입대가 뉴스가 된 건 그만큼 재벌가 자녀들이 특권을 누려왔다고 보는 사회적 시각 때문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한국 사회에서 반기업 정서는 상당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국민들의 기업 호감도는 지난 10년간 50% 언저리를 맴돌았다. 올해 상반기 기업 호감도는 100점 만점에 47.1점이었다. 국민 10명 중 5명이 기업에 대해 호감보다 반감이 크다는 의미다.

재계에선 “잘못된 경제 교육과 포퓰리즘이 빚어낸 현상”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기업과 일부 재벌가(家)의 일탈된 행동도 빌미를 제공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땅콩 회항’ 사건과 그에 대처하는 대한항공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자아낸다. 뿐만 아니다. 잊을 만하면 재벌가의 분쟁, 막말, 폭행, 횡령·탈세 등도 반복된다.

재벌가 자제의 병역기피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병무청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11개 주요 재벌가 성인 남자 114명 가운데 35.1%인 40명이 군대를 면제받았다. 1970년대생의 면제율은 41.7%로 같은 나이대 일반인 면제율(18.3%)의 두 배가 넘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가에 쏠리는 관심이 크다보니 몇몇의 일탈 행위로 전체가 매도당하곤 한다”며 “이제 우리 기업과 재벌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