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과 관련해 “현재 12개국이 협상 중으로 한국이 무작정 참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한국이 조기 합류를 희망했으나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거절당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이 참여할 경우 협상이 더 늦어질 것을 우려해 TPP 협상이 마무리된 뒤 한국이 합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TPP 협상에서 우리 의견을 반영할 길이 없어지게 된다. TPP 기존 참여국들의 합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양자택일하는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이 TPP 참여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이미 FTA를 체결했다고 하지만,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다자간 TPP 협상 조기 참여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기회를 놓쳤다는 건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통상협상이 우리 일정대로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데도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동안 한·중 FTA 협상과 병행하더라도 미국이 주도하는 TPP 참여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음에도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년 전에 참여 의사 정도만 밝힌 채 공식 선언을 하지 않고 미적대기만 했던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이 아·태지역 영향력을 놓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한·중 FTA를 우선시하는 쪽으로 달려갔다. 미국이 한국의 TPP 협상 합류 희망에 대해 ‘선(先)협상타결, 후(後)참여’라는 원칙을 내세웠다지만 여기엔 한·중 FTA 타결을 바라보는 미국 조야의 불편한 정서가 알게 모르게 내포돼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윤 장관에 앞서 지난달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이 미국 당국과 싱크탱크에 TPP에 대한 한국의 조속한 참여를 희망했던 것도 그런 물밑의 흐름을 뒤늦게 인식한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전체 판을 읽지 못하는 전략 부재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한국 통상외교의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