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전북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열린 출가식. 4~6년의 교육 과정을 마친 30여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성직은 스스로 맡은 천직’임을 다짐하며 성직자로서 의무를 다할 것을 서원(誓願)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50~60대 3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원불교가 처음으로 배출한 ‘기간제전무출신’이다.

전무출신이란 원불교의 출가교역자(성직자)를 총칭하는 것으로, 기간제전무출신은 신앙심과 능력을 갖춘 신자에게 성직자의 문호를 개방해 1년의 단기교육을 받은 뒤 최대 12년까지 출가자로 일하게 하는 제도다. 10년 넘게 전남 순천대 컴퓨터공학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다 ‘늦깎이 출가자’가 된 김덕찬 교무(50·사진)를 만났다.

“네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출가하려고 했으나 아버님의 반대로 포기했고, 24세 땐 교단의 최고 지도자이셨던 대산 종법사(1914~1998)를 여름 내내 모시면서 출가를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로부터 5년 후 전남 영광의 원불교 성지에 있는 영산선학대에 지원했으나 면접에서 낙방했죠.”

김 교무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 출가의 뜻을 꺾은 뒤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에 가스 폭발 사고가 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김 교무는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어 3년 가까이 병원 신세를 졌다.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더욱 어려움이 많았다. 화상의 후유장애도 그를 괴롭혔다.

그런 가운데서도 김 교무는 원불교의 교리와 경전은 물론 도가의 경전, 양생술 등을 탐독하고 옛 경전을 필사하면서 공부를 지속했다. 하지만 세 번째 도전마저 실패하자 “이번 생에 출가 인연은 없나 보다”며 포기했다. 대신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마친 후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 등에서 강의했고, 순천차문화교육원을 설립해 차 문화와 차 명상 프로그램을 보급해왔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아내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기간제전무출신제도가 생겼으니 평생의 소원인 출가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던 것. 이에 따라 김 교무는 지난해 8월 영산선학대에 설치된 ‘기간제전무출신 선원’에서 1년 동안 교무가 되기 위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이수한 후 마침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김 교무의 딸 혜원 양(21)과 아들 혜천 군(20)도 원불교 교무가 되기 위해 영산선학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홀로 남은 아내도 기간제전무출신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어 일가족이 모두 성직의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이달 말쯤 보직을 받게 될 김 교무는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주면 좋겠다”며 “어떤 일이 주어져도 세상을 위해, 교단 발전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하는 성직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