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러시아 불안에
글로벌ETF가 담은 종목 한꺼번에 쏟아내 대형주 '흔들'
기관, 電車 보통주+우선주 매수
기업은행·KT&G·SK텔 등 전통적인 배당주도 담아
외국인 투자자들은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4088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최근 6거래일 동안 외국인이 팔아치운 주식은 2조2900억원어치에 달한다. 지난달 18일 이후 3주에 걸쳐 2조6778억원어치를 사들였지만 이를 되파는 데는 1주일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삼성전자(8641억원), 현대차(1900억원), 포스코(974억원) 등을 많이 팔았다.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가 보유 종목을 한꺼번에 정리하다 보니 시가총액 상위주를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졌다는 설명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제유가 하락과 러시아 채무불이행 우려로 신흥국 증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한국 증시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숀 코크란 CLSA 한국대표는 “신흥국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유가 하락은 매도 신호”라면서 “일단 신흥국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 개별 증시의 전망이 좋든 나쁘든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치의 약세 전망,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 하락 등도 외국인들의 매도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혔다. 김경덕 BoA메릴린치 주식영업담당 전무는 “내수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호텔신라 한국전력 등 선호하던 주식들이 정책의 역풍을 맞고 급락하면서 한국 주식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1일 매도액과 관련해서는 지금보다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했다. 이도훈 CIM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인도네시아나 태국에서와 같은 투매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목받는 기관의 쇼핑바구니
외국인의 매도 폭풍에도 지수가 1900선 이상을 유지한 것은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들이 외국인 매물 중 일부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연기금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5312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펀드 자금을 운용하는 운용사도 2138억원을 증시에 투입했다.
연기금은 외국인이 싸게 매물로 내놓은 전자와 자동차업종을 사들이는 한편, 배당이 후한 종목의 비중도 함께 늘렸다. 삼성전자 보통주를 2004억원어치 사들이는 동시에 우선주 704억원어치를 함께 매입하는 식이다. 현대차도 보통주 618억원어치, 우선주 493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대신 배당이 후하다. 운용사는 배당에 집중하는 성향이 더 뚜렷했다. 배당주 성격이 강한 KT&G(834억원)와 기업은행(709억원)이 각각 순매수 1위와 3위를 기록했다.
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관이 전자와 자동차, 배당주에 집중하는 것은 다른 업종이 워낙 안 좋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며 “화학이나 정유주는 국제유가 하락이 무섭고, 아모레퍼시픽 같은 소비주는 주가가 너무 비싼 상태”라고 말했다.
송형석/강지연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