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겨울처럼 어깨가 한없이 움츠러든다. 맹추위 탓만이 아니다. 지금도 어둡지만 미래는 더욱 두려운 때문이다. 곳곳에서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위기를 인지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정치권도, 청와대도, 언론도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위기를 인지하고 대처방안을 고민하긴커녕 만인 대 만인의 갈등 강도만 증폭시킨다.

그해 겨울 터진 외환위기가 그랬다. 위기의 징후가 동남아에서 스멀스멀 북상했지만 나라의 관심은 온통 연말 대선에 쏠려 있었다. 부채로 쌓아올린 대기업들이 한보를 필두로 속속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기아차 국민기업!’이란 구호가 통했고 구조개혁의 마지막 기회도 스스로 날려버렸다. 위기가 닥치고서야 뒤늦게 청와대에 미리 보고했느니 않으니를 놓고 꼴사나운 ‘네 탓 공방’만 이어졌다.

지금도 다를 게 없다. 간판기업들부터 실적악화와 신용등급 강등의 칼바람을 맞고 있다. 중소기업, 자영업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나라의 관심은 온통 조현아, 정윤회에 쏠려 있다. 하나는 재벌녀 막장드라마요, 다른 하나는 궁중투쟁 비사 수준이다. 그러는 동안 나라 밖에선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온다. 셰일혁명으로 유가는 이미 반토막이다. 슈퍼달러의 기세가 등등할수록 신흥국들의 비명소리는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심지어 디폴트 위기다. 세계의 국부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모든 게 안갯속이다.

하지만 청와대도, 정치권의 그 누구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지식인들마저 드라마에 골몰한다. 나라 밖 변화에 대해 정확하고 깊이 있는 현안 분석을 내놓는 지식 생태계의 실종이다. 언론은 또 어떤가. 언론은 사회적 담론을 담아내는 그릇이요 지식의 도관이다. 그러나 지금은 뒷골목 가십을 증폭하는 그 자체로, 찌라시일 뿐이다. 지금 한국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대처해야 할지를 한국 언론에선 찾아볼 수 없다.

포퓰리즘에 찌든 정치권은 더더욱 기대할 게 없다. 갈등과 파괴의 본산이 된 지 오래다. 예컨대 MB정부가 자원고갈론이란 그릇된 인식에 휩쓸려 자원개발에 ‘올인’했던 것도 문제지만, 이제와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난리치는 것도 문제다. 지금은 오히려 싸게 매물로 나온 유전·광구를 물색할 때지만 당장 처분하라고 아우성이다. 비싸게 사고, 싸게 파니 한국은 국제 자원시장의 ‘호갱’이다.

국가적인 위기 감지능력의 총체적 고장 상태다. 지금이 막장드라마나 궁중비사의 다음 회를 궁금해 할 상황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말만 무성했지 제대로 된 개혁을 한 적이 있는가. 정치 개혁, 공공 개혁, 노동 개혁, 서비스업 규제혁파…. 외환위기 이후 17년간 말만 무성했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위기는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들이닥친다. 이번에도 닥치고 나서야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배를 내밀며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장담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