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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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페인트공업(주)은 70여년 동안 페인트 외길만 걸어온 기업이다. 한국에서 동업 회사의 효시이기도 하다. 1946년 고(故) 김복규·윤희중 회장이 동화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 도료(페인트를 총칭)생산 공장을 설립해 국내 페인트 산업을 출발시켰다.

삼화페인트는 건축용 페인트 시장에서 아직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 페인트 시장에서는 KCC에 이어 2위다.

2000년 고려화학을 인수한 KCC가 자동차 조선 등 산업용으로 쓰는 페인트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화페인트 뒤에는 노루페인트가 쫓아오고 있다. 3조원 규모의 국내 페인트 시장에서 점유율은 KCC가 30%, 삼화가 13%, 노루는 12% 수준이다.

삼화는 지난 3월 도료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네덜란드 악조노벨에서 부사장을 지낸 허성 씨를 신임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했다. 허 사장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삼화페인트에 새바람을 불러오며 새 성장동력 찾기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신임 사장의 거침없는 행보

허 사장은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페인트 시장은 아직 크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삼화페인트 매출에서 35%가량 차지하는 건축용 페인트 비중을 낮추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 판매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서울 대치동에 개장한 플래그십 매장 ‘홈앤톤즈’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경쟁 상대는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컬러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앞으로 페인트 회사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사업의 큰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라는 게 허 사장 얘기다. ‘색채’를 다양화하고 고급화하는 데 주력하고, 3차원(3D) 페인팅에 관심을 갖는 것도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변화다.

삼화페인트가 부족한 사업 분야를 채우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중방식(교량용)과 PCM(코일코팅)페인트 부문을 보강하고 제관 분야에도 투자할 예정이다. 최근 증설을 끝낸 충남 공주 공장이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수적이던 회사 분위기도 달라졌다. 허 사장은 ‘캐주얼 프라이데이(캐주얼 의상을 입는 금요일)’ 제도를 만들었다. 직원들이 다채로운 색상의 옷을 입은 사진을 팀별로 찍어 사내 ㅊ게시판에 올린 뒤 1등을 뽑아 회식비를 주는 이벤트다. 허 사장은 수시로 화상회의를 하고, 밤낮없이 직원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업무지시를 한다. 사내 팀 회의에 예고 없이 들어가 직원들을 혼비백산시키기도 한다.

다양한 제품군으로 성장

산업용 페인트는 건설, 자동차, 조선, 전기·전자 등 전방 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삼화페인트는 건축용, 공업용, 중방식용, PCM, 플라스틱(모바일용), 가정용 DIY(Do It Yourself) 등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갖췄다. 몇 년 전부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모바일 페인트 산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키웠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홈앤톤즈’ 매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인 ‘더클래시 아토프리’를 비롯해 스스로 칠하는 DIY 전용제품인 ‘홈스타 파스텔 OK플러스’, 이탈리아산 고급 데코레이션 페인트 등을 팔고 있다. 갤러리를 꾸며 놓고 윤지원 조국현 등 회화 작가들이 페인트로 그린 그림을 걸었다. 무료 강좌도 연다. 주부는 물론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 건물주에게까지 인기가 높다.

세계적인 색 전문기업 스웨덴 NCS컬러AB와도 업무제휴를 맺었다. 이를 통해 삼화는 950여개에 달하는 색상을 갖췄고 소비자가 원하는 색채를 만들어 주는 자동조색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4519억원, 영업이익 249억원을 냈다. 2005년 대비 2배 이상 커졌다. 지난 3분기엔 매출 1340억원과 영업이익 134억원, 당기순이익 109억원을 기록했다.

삼화페인트의 최근 주가는 1만20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근 1년 새 두 배가량 올랐다. 사업을 다각화하고 해외 법인들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다 소비자 마케팅도 활발히 하고 있어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고 증권가는 내다보고 있다.

동업 관계는 사실상 끝나

삼화페인트의 시초는 동업 회사다. 일제시대 일본 간사이페인트에 입사해 페인트 제조기술을 익힌 고 김복규 회장은 영업과 생산 등 현장을 맡았고,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고 윤희중 회장은 회계와 인사 등 관리를 책임졌다. 2세 들어서는 김 창업주의 아들인 김장연 대표가 아버지 자리를 물려받았고, 윤 창업주의 차남인 윤석영 전 대표는 2003년부터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윤 전 대표가 2008년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김 대표가 혼자 회사를 책임지는 구도로 바뀌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