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안방부터 모바일기기까지…삼화페인트로 디자인하겠다"
삼화페인트는 올해 초 페인트 업계에서 화제를 불러모았다. 지난 68년간 대주주가 경영하는 체제를 유지해온 이 회사가 외국회사 출신 전문경영인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페인트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네덜란드 악조노벨(Akzo Nobel)에서 부사장을 지낸 허성 사장(53)은 캐나다에 이민 간 뒤 30여년간 외국에서 지냈다. 한국 회사에 근무하는 것은 삼화페인트가 처음이다. 악조노벨에 근무하며 김장연 삼화페인트 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사장으로 오게 됐다. 서울 종로구 묘동 삼화페인트 집무실에서 만난 허 사장은 “동남아 출장을 마치고 지금 막 돌아왔다”고 말했다.

▷베트남에 있는 법인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삼화페인트는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 법인이 있습니다. 모바일용 페인트를 주로 생산하는 베트남 법인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왔습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공업용 페인트에서 삼화페인트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원래 이 시장은 한진화학 AK켐텍 등 소재 화학업체들의 분야였죠. 삼화페인트는 2004년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삼성전자 내 모바일 코팅분야 1위 공급업체가 됐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었나요.

“삼성에서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더군요. ‘삼화페인트는 부르면 40분 안에 들어온다’고요. 그만큼 우리가 ‘입맛’에 잘 맞추고, 열심히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삼화페인트는 플라스틱을 금속처럼 광택이 나게 만드는 페인트, 고운 점토를 만지는 것처럼 촉감을 부드럽게 해 주는 페인트, 지문과 흠집을 덜 내는 페인트 등 기술력이 응집된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일각에선 모바일 기기 페인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증권가에서 삼화페인트를 ‘삼성 수혜주’로 분류하더군요. 제대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모바일 페인트는 국내 매출의 10%, 해외 매출의 20%에 불과합니다. 이 분야는 중요한 사업의 하나지만, 그렇다고 삼화페인트가 목을 맬 만큼 절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이 최근 주춤하면서 삼화페인트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인도와 미국 등에서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태블릿PC도 그렇습니다.”

▷건설경기가 장기간 침체를 겪으면서 건설용 페인트 판매가 어렵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건축용 페인트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입니다. 가장 큽니다. 하지만 지금 건설경기는 ‘침체’라기보다는 ‘성숙’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캐나다 토론토대 경제학 교수인 데이비드 K 푸트는 ‘붐, 버스트 & 에코’라는 책에서 세계 인구 흐름에 대해 베이비붐 이후 베트남전으로 인한 인구 감소,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푸트의 이 이론을 국내 건설시장에 대입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건설경기는 붐(활황)과 버스트(침체)를 지나 지금은 보다 성숙해진 ‘에코(활황)’ 단계로 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일단 주거공간이 예전보다 작아졌고, 사람들의 개성도 점점 다양해집니다. 트렌드와 수요가 모두 달라진 거죠. 삼화페인트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홈앤톤즈’라는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습니다. 페인트 회사에서 컬러 컨설팅을 해 주고, 프리미엄 제품을 팔고, 그림을 걸어놓고 수업도 해 줍니다. 이런 소비자 시장이 아직 크진 않지만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건설시장이라는 레드오션 속에서도 소비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블루오션’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삼화페인트는 색상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컬러TV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TV와 컴퓨터, 스마트폰 등 기기의 발달은 사람들이 색상을 보는 눈을 더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삼화페인트는 컬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색채가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일찌감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글로벌 색채 전문기업 NCS컬러AB와 제휴를 맺은 것도 다양한 색상을 갖추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캐주얼 프라이데이(캐주얼 의상을 입는 금요일)’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삼화페인트 사장으로 온 뒤 도입한 제도입니다. 직원들이 다채로운 색상의 옷을 입은 사진을 팀별로 찍어 사내 게시판에 올리면 1등을 뽑아 회식비를 주는 이벤트입니다. 재무팀이 가장 칙칙하게 입더라고요(웃음).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우리부터 컬러를 알자’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색깔에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우리 업(業)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업의 본질이 바뀌면 직원 채용에도 변화가 있겠네요.

“삼화페인트 컬러디자인센터장은 미술학 박사 출신입니다. 홈앤톤즈 매장에는 디자인을 전공한 직원이 여럿 있습니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삼화페인트는 단순히 페인트를 제조하는 업체가 아니다. 소비자와 고객사에 솔루션(해결책)을 제시하는 회사다. 페인트는 더 이상 굴뚝산업이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소비자들의 안방과 서재까지 들어갈 겁니다.”

▷인수합병(M&A)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대한항공과 델타항공 등 항공사들이 모여 만든 ‘스카이팀’에 대해 들어봤을 겁니다. 과거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치열하게 경쟁하던 사이였지만 동맹을 만든 뒤 마일리지를 서로 교환하는 협력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M&A도 좋지만, 항공업계의 이런 ‘공유 모델’을 먼저 도입하고 싶습니다. 넓은 의미의 협력 관계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변화입니다. ”

▷삼화페인트 사장이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1982년 캐나다로 이민 간 뒤 줄곧 해외에서 생활했습니다. 악조노벨 근무 당시 김장연 삼화페인트 대표가 나에게 (사장직을) 제안하더군요. 사실 많이 망설였는데, 와 보니 아주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삼화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3.7년으로 업계 1위입니다. 징글징글하게 안 나가요(웃음). 이렇게 충성도가 높은 인적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과제겠죠. 주말에도 수시로 직원들에게 카카오톡을 보내서인지 나더러 ‘카톡의 제왕’이랍니다(웃음). 사장으로서 제 가장 큰 장점은 유머감각이라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요.

“자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회사로 만드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과거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작업에 매진할 겁니다. R&D에 더 투자하고 새로운 사업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제관 분야, 중방식 사업, 코일코팅 등이 있겠네요. 삼화페인트의 경쟁 상대는 ‘패션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도 색채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잖아요. 앞으로 패션 디자이너와 치열하게 경쟁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삼화’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듭니다. 화목하다는 뜻 아니겠어요.”

■ 허성 사장은

1961년 서울 출생이다. 대학 때 캐나다로 건너갔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윈저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칼레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경제통’이다. 이후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알루미늄 제조사인 알칸에 입사했다. 2006년 미국 메탈세일즈사로 옮겨 구매부문 부사장을 지냈다. 2008년부터 올해 2월까지 페인트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네덜란드 악조노벨(Akzo Nobel)에서 부사장을 지냈다. 취미는 독서,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이 조직을 움직이는가’ ‘수도원에 간 CEO’ 등이다. 2남을 두고 있다.

글=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사진=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