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이야기를 품은 도시…여기는 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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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의료원 내 고풍스런 선교사의 집](https://img.hankyung.com/photo/201412/AA.9408210.1.jpg)
김광석거리의 낭만과 문화…방천시장
![김광석거리에 있는 김광석 동상](https://img.hankyung.com/photo/201412/AA.9408147.1.jpg)
김광석의 노래는 언제나 나지막하다. 그가 태어난 대봉동 방천시장 입구에서 시작되는 김광석거리에는 김광석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싸한 날씨에도 사람들은 그를 추억하듯 그가 그려진 벽화와 노랫말을 보며 상념에 잠겼다. 30대 초반 이룰 것이 많은 나이에 안타깝게 스러져간 그는 이제 노래와 벽화, 실물 크기의 동상으로만 남았다.
김광석거리가 잇닿은 방천시장은 서문시장이나 칠성시장 같은 큰 시장에 밀린 작은 전통시장이지만 이제는 문화와 예술을 품고 새로운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장사가 안 돼서 떠나간 빈 상가에는 마을기업 ‘아트팩토리 청춘’과 예술가들이 모여 공방을 만들었다. 손바느질이나 인형, 펠트공예, 만화, 일러스트 등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형 상가가 생기니 자연히 관광객도 늘어났다.
겨울 서정이 숨쉬는 청라언덕
![국채보상운동 제안자인 서상돈 선생 생가](https://img.hankyung.com/photo/201412/AA.9408183.1.jpg)
교회 뒤편으로는 90개의 계단이 나타난다. 1919년 1000여명의 학생들이 이 계단길을 따라 서문시장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부른 의미 깊은 곳이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프랑스인이 설계했다는 계산성당이 보인다. 서울, 평양에 이은 세 번째 고딕 양식의 성당인 계산성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성당에서 나와 이상화 시인의 생가 쪽으로 길을 나서면 보도블록에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구들이 마치 작은 파편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시인의 생가는 생각보다 단촐하고 소담하다. 금방이라도 시인이 작은 마루로 나와 남아있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책을 읽을 것만 같다. 시인의 큰형은 이상정 장군이고 동생은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이었던 이상백 선생과 유명한 사격인인 이상오 선생이다. 형제 중 자신이 가장 못났다고 털어놓았던 이상화 시인은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 시인의 생가를 마주한 기와집은 국채보상운동 제안자였던 서상돈 선생의 생가다.
선조의 숨결 느끼게 하는 불로동 고분군
![4~5세기 토착지배세력의 분묘인 불로동 고분군](https://img.hankyung.com/photo/201412/AA.9408199.1.jpg)
골목은 아니지만 추억과 명상에 젖을 수 있는 장소는 도동에 있는 불로동 고분군이다. 불로동 야산에 구릉을 형성하고 있는 고분군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푸근한 삶의 흔적들이다. 고분군은 모두 213기의 옛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경주의 고분군에 비하면 발굴된 유적도 적고 크기도 비할 바가 아니지만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알 수 있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고분군이다. 황영순 문화관광해설사는 “불로동 고분군은 서기 4~5세기 무렵 형성된 것들로 이 지역 토착 지배세력의 분묘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나지막한 산등성을 따라 고분을 하나씩 비켜가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운다. 푸른색의 뗏장에 남은 햇살이 닿으니 황금빛으로 채색된다. 사그락 거리는 바람소리만이 언덕에 걸려있고 영원한 잠에 빠진 혼백들이 저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구=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