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명품업체 에르메스코리아는 2000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제정, 매년 후보 작가 3명을 선정해 작품 제작과 전시를 지원한다. 15회째를 맞은 올해에는 미술그룹 ‘슬기와 민(최슬기+최성민)’, 여다함, 장민승이 후보에 올랐다. 이들 후보 작가의 작품은 내년 2월15일까지 서울 청담동 에르메스 전시장에 전시된다. 이 중 최종 수상자를 선정해 같은 달 13일 시상식을 연다.

에르메스코리아를 비롯해 삼성·한진·두산·한진해운홀딩스·OCI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의 수입총판 듀오, 에너지 기업 삼탄 등 기업들이 이맘때면 선정하는 우수 미술가들에게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거나 앞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미래의 블루칩’ 작가들이 속속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의 미술상을 받은 설치작가 서도호 씨를 비롯해 장영혜, 김범, 박이소, 박찬경, 구정아, 임민욱, 양아치 씨 등은 국내외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완 씨
이완 씨
삼성미술관 리움은 설치작가 이완 씨(36)를 올해의 유망주로 뽑았다. 리움은 2001년부터 격년제로 ‘아트스펙트럼’전을 열어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국제 무대에서 활동할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왔다. 올해부터는 리움 큐레이터와 외부 평론가 및 큐레이터가 추천한 10명의 작가 중 한 명을 선정해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이 상을 받은 이씨는 대만과 태국, 미얀마 등의 아시아 국가에서 설탕, 비단, 황금 등 특산물을 제작하는 과정과 결과를 작품에 담아냈다. 아시아 근대화에 대한 사회의식이 돋보인다는 평. 리움은 2016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이씨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2014 에트로미술상’은 서양화가 이지연 씨에게 돌아갔다. 삶의 현장에서 고생하는 여성들이 동물 및 죽은 자들과 소통하며 억압에서 해방된다는 주제의 이색적인 회화 작업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14 에트로미술상’을 수상한 이지연 씨의 ‘아궁이 여신’.
‘2014 에트로미술상’을 수상한 이지연 씨의 ‘아궁이 여신’.
외국 유망 작가도 국내 기업의 미술상 수상 대열에 합류했다. 한진해운홀딩스가 선정하는 상금 1억원대의 ‘양현미술상’에는 태국 영상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낙점됐다.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영화를 공부한 위라세타쿤은 태국 정글과 시골 마을을 유령과 초현실적인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장소로 만드는 영화에 헌신하는 한편 설치미술, 사진, 아티스트 북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영상의 새로운 미학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정경자 씨
정경자 씨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의 ‘제5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 만한 작가’에는 정경자 씨가 20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름을 올렸다. 정씨는 오는 24일까지 서울 소공동 일우아트스페이스에서 우연과 필연의 관계를 렌즈로 포착한 작품 50여점을 보여준다.

또 삼탄그룹의 송은문화재단은 올해 초 제13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자로 설치작가 박혜수 씨를 선정한 데 이어 내년 최종 후보로 조소희, 도수진, 이진주, 전소정 씨를 선정했다.

삼탄은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내년 1월31일까지 네 명의 합동 전시를 연 뒤 대상 한 명을 선정한다. 이 밖에 안국약품의 올해의 작가엔 서양화가 김은영 씨, 두산그룹의 올해 연강예술상 미술 부문에는 이윤성 씨가 각각 뽑혔다.

선화랑의 원혜경 대표는 “기업은 미술가들에게 재정 지원만 하는 게 아니라 협업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끌어올리기도 한다”며 “작가의 창조성과 혁신을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 연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