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간다. 2014 갑오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시간은 그저 흐를 뿐이고, 그런 시간 속에 우리가 했던 행동은 눈밭에 난 발자국처럼 역사로 남게 된다. 지난 한 해 과연 우리는 발전적 역사를 남겼나.

2013년 말 ‘2014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퀀텀점프의 기적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지난 3월에는 비장한 마음으로 규제혁파를 외쳤다. 그리하여 정말 희망도 가져보고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나아진 것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하나같이 내년 한국 경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본다.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모든 것을 삼켰다.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에 차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실천 의지도 먹히지 않았고, 경제활동이 멈췄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으므로 문제의 본질을 찾고 해법을 마련해야 했는데 무기력 속에서 세월만 보냈다.

경제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 대표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이어졌다. 중소기업, 자영업도 마찬가지였다. 일자리 부족으로 취업이 어려워진 청년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반면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 자동차, 모바일, TV 기술에서 우리를 위협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딴 세상이었다.

정부는 규제혁파를 하겠다면서 오히려 새로운 규제를 쏟아냈고, 돈 풀면 경제가 살아나는지 돈만 풀어댔다. 정치권은 경제활성화법들은 팽개쳐 놓은 채 무상복지 논쟁만 벌였다. 최근엔 비선 실세인 정윤회의 국정 개입을 둘러싸고 날선 공방으로 날을 보내고 있다.

저성장은 사람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다. 팍팍한 살림살이로 사람들의 마음은 서로 갈라져 분열과 갈등이 증폭됐다. 토마 피케티에 열광했고, 분배와 복지가 최우선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반(反)기업 정서가 만연했고,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그 정서가 더욱 거세졌다. 반기업 정서는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데, 대기업과 대기업 소유자들의 불법적·위법적·편법적인 행위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업의 숨통을 죄는 수많은 규제와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환경에서는 경제가 결코 살아날 수 없다. 게다가 지금 외부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일부 산유국들이 디폴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상황 역시 심상치 않다. 이 중 하나라도 터지면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칠 것이고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외부 충격에 유난히 약한 한국 경제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형국이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의 흥망성쇠가 제도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정치·경제제도를 갖는 국가는 망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정치·경제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는 흥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여년 동안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을 만들기보다는 경쟁을 제한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조치들을 취해왔으며, 세금을 늘리는 등 재산권을 침해하는 제도들을 대거 만들었다.

이런 제도들이 들어선 까닭은 국민들의 정서에 있다. 국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기보다는 정부를 통해 자원을 배분받기를 원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정치인들은 표를 위해 포퓰리즘 정책들을 남발하게 된다. 국민들이 기업에 대해 잘못 이해하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 정치권은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 이런 정책들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 너무 늦기 전에 발전적인 새 역사를 만들자. 정부와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좋은 제도를 만들고, 국민들은 분열과 갈등의 혼란에서 벗어나자. 대기업과 소유주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자. 이렇게 해 내년에는 희망을 이야기하자. 그러면 시간은 우리 편이 될 것이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교수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