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가족 울타리 지었으면
김주하 < 농협은행장 >
가족이란 혈연과 혼인 관계를 통해 한 집안이라는 울타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맺어지는 관계이고, 서로의 단점까지도 보듬어주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든 어깨를 기대고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며, 아무런 조건 없이 나의 어떠한 모습도 감싸주는 것 또한 가족이다.
하지만 그 울타리가 외부와 차단되는 너무 견고한 것이라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원래 울타리는 싸리나무 등을 새끼줄로 듬성듬성 얽어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경계를 표시하는 정도의 것이다. 담장처럼 흙이나 돌로 쌓아 외부와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간 일부 재벌가 자제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그들이 울타리가 아닌 자기들만의 담장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익히지 못한 철부지로 자라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흔히들 지금은 가족의 위기 시대라고 한다. 과거 농경사회 기반의 대가족 제도 아래서 가족은 양육과 노후 보장의 기능을 했지만,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고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기능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또 이혼율의 증가와 저조한 출산율은 가족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장해야 할 때다.
미우나 고우나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가족의 본질을 상기하면서 그 울타리는 사회를 향해 점점 더 넓혀가야 한다. 직장동료와 이웃은 물론이요, 나라 전체가 한 울타리가 되고 세계가 한 가족이 되는 글로벌 시대에 높고 촘촘하기보다는 넓고 성긴 유연한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김주하 < 농협은행장 jhjudang@nonghyu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