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온도계가 49.7도에 머물러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온도계가 49.7도에 머물러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올해 경기침체와 세월호 참사가 겹치면서 성탄절 분위기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연말 특수가 사라진 데다 기부의 따뜻한 손길도 예년보다 줄었다.

성탄절 전날인 24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는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와 중국,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거리 모습은 예전 성탄절 이브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명동 상인들이 느끼는 분위기는 달랐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의류점을 운영했다는 한 상점 주인은 “손님들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들”이라며 “요새는 우리 젊은이들이 성탄절이라고 특별히 옷을 구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성탄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 이유로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진 것을 꼽는 사람이 많았다. 명동 길거리 상가에선 캐럴 음악을 듣기가 힘들었다. 맞은편 롯데백화점 본점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연면적 3000㎡ 이상인 백화점과 대형마트, 유흥주점 등이 매장이나 옥외에서 캐럴 등의 음악을 사용하면 매장 성격 및 규모에 따라 한 달에 최대 130만원의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 매장이 많은 유통업체에서는 사용료가 월 수천만원에 이를 수 있다.

지난해 말에는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공연사용료와 공연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부 소형 매장에서 캐럴을 트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점차 저작권 보호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소형 매장들도 캐럴 트는 것을 꺼린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기부의 손길도 예년보다 줄었다. 국내 대표적 법정모금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사랑의 온도탑’은 이날 오전까지 49.7도를 기록했다. 사랑의 온도탑은 성금 목표액을 1%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온도가 상승한다.

캠페인이 시작된 지난달 20일부터 이날까지 걷힌 모금액은 1624억원으로, 성금 목표액(3268억7700만원)의 49.7%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전체 성금 모금액의 58.2%가 걷혀 사랑의 온도는 58.2도를 기록했다. 모금회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지난해에 비해 개인과 기업 모두 기부 건수와 액수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 상당수 기업이 이미 적잖게 기부한 것도 캠페인 기부액수가 저조한 또 다른 이유다.

이에 따라 사랑의 온도탑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00도(목표액) 달성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99년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모금액 달성에 실패한 것은 사랑의 온도탑이 94.2도에 그친 2010년이 유일하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