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조정친화적 사회
법치주의하에서 민사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은 법원에 제소해 판결을 받는 것, 즉 사법권을 가진 국가기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법부에 의한 분쟁 해결 방법에는 엄격한 심리절차나 불복절차 등이 규정돼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근래 대체적 분쟁 해결 방법으로 중재나 조정이 권장된다.

중재는 당사자가 합의한 중재기관의 판단에 따르기로 하는 것이고 조정은 조정자의 권고나 설득에 따라 당사자가 합의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민사조정법은 민사에 관한 분쟁을 간이한 절차에 따라 당사자 간 상호양해를 통해 조리를 바탕으로 실정에 맞게 해결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조정 전담 판사와 학식과 덕망을 갖춘 민간 조정위원들이 참여해 조정의 확대와 성공에 힘을 쏟고 있다.

당사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또는 조정위원으로서 조정에 관여한 경험에 따르면 두 가지 부류의 당사자를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정의를 내세우며 타협과 양보에 인색한 사람이고, 두 번째는 자기 주장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현실적 상황에 아량을 보이는 사람이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우리나라에서 수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의 정의에 대한 갈망이 절실함을 보여주는 반면, 정의에 관한 단순한 기대가 큰 것이 오히려 타협에 인색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사회생활에서 정의란 것은 단순논리로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의를 논함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가 있다. 이런 요소들의 타협점을 찾는 사고능력 배양이 중심과제라고 본다. 국가의 법률이나 제도도 충돌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타협한 결과물이 아닌가. 따라서 조정 절차에서 상호 양보해 합의에 이르러 조정이 성립한다면 이것이 바로 분쟁을 해결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조정의 성공은 조정 담당자의 공정한 입장에서의 설득도 필요하겠으나 무엇보다도 분쟁 당사자의 진정성 있는 대화와 열린 마음의 발로가 필수적이다. 각종 분쟁에서 조정 성공률이 높아지면 분쟁 해결을 위한 사회적 비용도 절감되고 행복지수도 높아질 수 있다. 내년 한 해도 조정 성공률이 좀 더 높아져 ‘조정친화적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재후 <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