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사회에 걸맞은 인재상은 '간판보다 실력'입니다. 안전제일 직업관을 벗어던지고, 청년층이 잡프런티어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펙초월 채용문화'로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전문 지식인과 맞춤형 전문대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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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시원한 민머리에 잘 다듬은 수염, 뿔테 안경과 귀걸이, 편한 후드티에 청바지까지. 서울 삼성동 회사 사무실에서 만난 윤용기 바른손이앤에이 대표(48·사진)의 첫인상은 ‘쿨’하고 ‘스타일리시’했다. 명함에 박힌 대표이사 직위보다 아트 디렉터, 그래픽 디자이너 등 그의 커리어와 딱 들어맞는 인상이었다.

그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다. 지난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했다. ‘리니지 이터널’ ‘아키에이지’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대작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바른손이앤에이로 옮긴 후 차세대 MMORPG(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아스텔리아’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학생이었죠. 홍익대 미대에 두 번 떨어지고 서울예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습니다. 학교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커요. 서울예대 출신이란 걸 항상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자신의 말처럼 윤 대표는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미국으로 유학 가 명문 AAU(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를 졸업했지만 서울예대 출신을 강조한다. 정부가 수여하는 굵직굵직한 상보다 학교가 동문에게 주는 ‘삶의 빛’상 수상을 더 앞세웠다. 배우 신구, 이상봉 디자이너, 이명세 감독, 신경숙 작가 등 쟁쟁한 동문들이 받은 상이다.

그런 그도 아쉬워하는 부분이 있다. 전문대 출신에게 으레 따라붙는 편견이 그것. 윤 대표는 “성공회대 교수로 초빙됐는데 전문대 출신을 전임교수로 임용했다면서 ‘파격 인사’라고 하더라” 며 “그럴수록 전문대 출신임을 밝히는 게 후배들에게도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똑같은 공부를 하는 곳인데 해외 칼리지는 쳐주고 전문대는 낮춰보는 건 왜인가요. 해외 유명 대학원까지 나온 저에게도 ‘전문대 출신’이란 딱지가 붙더군요. 사실 서울예대는 명문 4년제대 졸업하고 오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경우는 전문대 출신이라고 하지 않거든요. 저는 전문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이런 잘못된 사회적 인식은 바뀌었으면 합니다.”
/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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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력이 다채롭다. 할리우드 대작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미국에서 공부하고 게임회사에 시니어 일러스트레이터로 들어갔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게임회사 스퀘어(현 스퀘어 에닉스)의 미국지사였다. 회사가 로스앤젤레스 쪽에 있었다. 인근에 할리우드가 있어서 부업으로 영화 오프닝 타이틀 작업 의뢰가 많이 들어왔다. 그때 ‘타이타닉’ ‘트루먼 쇼’ ‘쾌걸 조로’ 같은 영화들 작업을 했다. 콘셉트 디자이너로 일했고 자넷 잭슨의 뮤직비디오 아트 디렉터도 맡았다. 다양한 특수효과를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

-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AAU를 졸업했다고.

“예술 쪽으로 평판이 좋은 학교다. 이름은 유니버시티지만 배우는 내용은 실용적 칼리지에 가깝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나오긴 했지만 서울예대에 대한 자부심이 큰 동문이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올 2월에 비(非)공연 계열 학과 출신으로는 처음 학교가 동문에게 주는 ‘삶의 빛’상을 받았다. 서울예대가 유명한 편이지만 주로 방송이나 연기 쪽이 강세니까.”

-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 전문대를 택한 이유는.

“그림을 워낙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호기심도 많았고. 고교 땐 또래 대부분이 그렇듯 명문 4년제대에 가고 싶었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학생이었으니 홍익대 미대가 1순위였다. 공부도 웬만큼 했다. 강남권 학교(경기고)에서 중상위 성적은 유지했다. 무조건 홍익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차례나 떨어졌다. 너무 가고 싶은 학교였기 때문에 좌절도 많이 했다.

그러고 나니 군대 영장이 나올 때가 됐다. 군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도전할 생각이었는데, 부모님은 일단 소속은 두길 원했다. 어머니가 서울예대 원서를 구해 와서 실기시험 치고 입학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 대한 애정이 그다지 없었다. 곧바로 군 생활을 해야 했다.”

- 학교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다다’ 주연을 맡은 배우 신혜수 씨 오빠와 친하게 지냈다. 서울예대 선배였는데 많은 얘기를 해줬다. 좋은 학교니까 일단 다녀보고 대학 입시를 다시 볼지 말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거였다. 결국 홍익대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복학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땐 정말 미친 듯이 공부한 것 같다.”

- 또래들보다 늦게 대학에 갔을 텐데.

“막상 가보니 세상에 이런 학교가 없는 거다. 다른 대학에 진학했으면 그만큼 끼가 있는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을 못 만났을 것이다. 너무 좋았다. 학교 선배이기도 한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이 강사를 맡아 강의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인연이 돼 재작년엔 선생님과 콜라보레이션으로 전시회도 했다. 선생님과 외모가 닮았다고들 하더라. (웃음)”

- 뭐가 그렇게 좋았나.

“유학 가서 안 건데, 수업 방법이 완전히 미국식이었다. 창의력이 중요한 디자인 수업은 절대 주입식이 되면 안 된다. 서울예대 수업은 학생들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답을 안 주고 스스로 도출하게 했다. 강의를 굉장히 소규모 클래스로 나누고 학생 발표도 많았다. 힘들었지만 좋았다. 유학파 선생님들 중심으로 선진 수업기법을 도입할 때 학교에 들어가서 많이 배웠다.”

- 귀에 익은 대작 게임 개발에 많이 참여했다.

“지금은 아스텔리아란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다양한 소환수 ‘아스텔’을 활용해 기존 MMORPG와 차별화했다. 소환하는 아스텔에 따라 같은 클래스라도 전투 패턴이 달라지도록 해 게임 유저들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직전엔 아키에이지 총괄 아트 디렉터 역할을 했다. 이만한 게임들은 100명 이상이 4~5년 시간을 들여 만든다. 과거 몸 담았던 스퀘어 USA는 지금의 블리자드처럼 유명한 게임회사였다. 2000년까지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 게임을, 그 이후엔 PC용 게임을 만들었다. 국내 게임 산업이 커지면서 한국에 돌아왔다. 엔씨소프트 글로벌 아트 프로덕션 디렉터를 맡은 적도 있다.”

- 성공의 비결, 또는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무엇인지.

“믿음, 그리고 사람. 보통 생각하는 예술과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예술은 혼자 하면 된다. 이건 합동 작업이다. 정해진 규칙 하에 상품화 하는 내용으로 작품을 함께 하는 거다. 나만의 예술 작업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 전제조건이 믿음이고. 뻔한 얘기 같지만 그게 연결고리가 되고, 하나의 팀을 만든다.

사실 게임 개발이 소위 말하는 3D 업종이다. 집에도 잘 못 가고 야근 할 때도 많다. 정말 일을 좋아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또 작업을 끝냈을 때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런 믿음과 희망,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검증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게임이 재미있는 분야란 생각이 든다.”

- ‘셧다운제’ 같은 규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게임이 청소년에게 해악이란 건 부정적 면만 부각시킨 거다. 게임의 부작용이 10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게 90은 된다고 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놀이는 의식주와 비슷한 인간의 본능이다. 게임의 부작용까지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재미를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놀이 기능을 도외시할 필요도 없다.”

- 게임 산업의 성장을 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술이 발달하면서 컴퓨터를 활용해 그림 그린다고 해서 컴퓨터를 해악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니까. 게임도 그렇다. 툴(tool) 자체를 문제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게임 발전이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발전을 이끌어내는 건 왜 외면하나. 보안시스템이나 가상세계, 군사 영역에도 응용된다. 이처럼 게임이 기초가 돼 연관 산업들이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 진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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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대 출신으로 성공하기까지 남모를 고충도 있었을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해 난 전문대 출신이라기보다 전문대를 거쳐 간 셈이다. 유학 가서 공부를 더 했으니까. 유독 우리 사회가 전문대 출신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 같다. 전문대 출신이든 아니든 성공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이런 풍토에선 전문대 출신이란 걸 거리낌 없이 말하기 쉽지 않다.

난 평소 전문대 출신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능력보다 그 부분이 더 조명되는지… 좀 아쉽다. 얼마 전에는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홍익대에서 겸임교수 제안도 받았다. 너무 바빠서 고사하긴 했지만 살짝 통쾌한 기분도 들었다. 뭐, 소심한 복수 같은 거지. (웃음)”

- 직접 겪은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

“성공회대 디지털콘텐츠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됐는데, 기사에서 ‘파격 인사’라고 표현하더라. 필요한 학위도 있고 나름대로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게임 개발자인데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내가 보기엔 너무나 ‘정상적 인사’ 같은데. (웃음) AAU 같은 미국의 아트 칼리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사실 전문대다. 그런데 해외 칼리지는 쳐주고 전문대는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 전문대 출신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건 사실이다.

“서울예대만 해도 명문 4년제 졸업 후 문예창작과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경우엔 ‘전문대 출신’이란 표현을 안 쓴다. 최종 학력이 전문대인데도. 내 경우와 비교되지 않는가. 결국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전문대는 성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전문적 공부를 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고 말이다.”

- 앞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은 어떤 것인가.

“말 그대로 본능에 충실한, 즐길 수 있는 게임. 거창하게 ‘예술적으로 최고가 되겠다’ 이런 것 말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기고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이면 된다. 다만 퀄리티는 앞서가는 게임, 남이 했던 것 말고 창조적인 게임을 만들어 보려 한다. 나 개인보다는 우리 개발자들이 마음껏 독창적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회사로 키워보고 싶다.”

◆ 나에게 전문대란…

오글거림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삶의 빛’인 것 같다. 모교에서 받은 상의 명칭이기도 하지만 내게도 그런 의미였다.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 게 새롭게 인생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다. 내 인생에 서울예대가 없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서울예대에 들어간 것은 우연에 가까웠지만 돌아보면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진연수 기자 jin9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