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대주주이자 당시 대표였던 한인수 씨가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하면서 임원이던 최종욱 씨가 후임 대표로 취임했다. 최씨는 이후 ‘재직시절 다수의 차명회사를 통해 횡령과 배임을 저질렀다’는 등의 이유로 한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 사내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던 한씨가 이사회를 열어 최씨를 해임했다.
하지만 최씨 측 공시 담당자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공시 담당자를 교체하기 위해선 한국거래소에서 법인인감을 날인해야 하는데, 인감을 최씨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이 현 경영진이 이사회에서 결의한 계열사 매각을 다음날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시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한씨 측이 “최씨 측으로부터 지난 26일 밤 넘겨받았다”며 29일 법인인감을 한국거래소에 제출해 공시 담당자가 한씨 측 인사로 교체됐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앞서 최씨 측이 낸 현 대표의 비리 혐의에 관한 공시는 권한 없이 무단으로 내보내졌다는 재공시가 나온 것이다.
회사가 경영권 분쟁 속에 상반된 공시를 내면서 투자자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한국거래소가 중간에 “공시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내용이 나가서는 안된다”며 내용의 균형을 주문하기는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같은 대응은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근본적으로 분쟁을 벌이는 당사자들의 입장이 균형 있게 나갈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거래소는 이에 대해 “제도적인 해결은 한국거래소의 유연한 대응을 힘들게 할 수 있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회사 공시 담당자가 누구 편이냐에 따라 공시 내용이 180도 달라지는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놔두기에는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커 보인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