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뢰, 한국 경제 회복의 필요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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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국민 서로를 불신하는 경제
성장의 선순환 가로막는 고질병
신뢰의 고갈 극복할 비전 실천을"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kesopyun@snu.ac.kr >
성장의 선순환 가로막는 고질병
신뢰의 고갈 극복할 비전 실천을"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kesopyun@snu.ac.kr >
국내외 산적한 어려움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국가 경제의 두 기둥인 기업인과 국민이 서로를 얕잡아본다고 생각해 나타나는 이른바 ‘호구 경제’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고용주이자 판매자이기도 한 기업인과 근로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국민 사이에 가로놓인 불신의 벽이 높아지고 있어 한국 경제의 앞날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한국 경제의 주체들은 상대가 자신을 어리숙해서 이용하기 쉬운 대상으로 취급한다고 믿는다. 기업인은 자신들이 근로자의 ‘호구’로 전락했다고 푸념한다. 한국 근로자의 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데도 임금 인상과 처우개선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내 고용은 최소화하고 해외 고용만 늘린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국내로 되돌아오는 것을 망설인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로 유턴하겠다고 응답한 해외 진출 기업은 1.5%에 불과하다. 국민은 국민대로 기업인이 자신들을 손쉬운 돈벌잇감으로 취급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비자들은 외제가 국산보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한 수 위이지만 애국심 마케팅으로 국산품 구매를 강요한다고 말한다. 같은 국산품이더라도 내수용과 수출용이 다르다고 의심한다. 그래서인지 국산품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하락 일변도다. 온라인 쇼핑을 통해 외제품 또는 해외 판매용 국산품을 구매하는 ‘직구(直購)’의 증가세가 무섭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1~4월 해외직구 금액은 전년 대비 56%나 늘었다.
이런 현상은 크게 두 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선 세계화가 씨앗을 뿌렸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인들은 고용의 신세계를 접했다. 외국 근로자가 한국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에도 불평 없이 장시간 생산라인을 지키는 모습에 매료됐다. 유학, 여행, 인터넷 등을 통해 해외 소비 생활을 엿본 국민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가격표를 붙인 양질의 상품에 눈을 떴고,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들에 실망감을 느꼈다.
정부 정책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이런 현상을 심화시켰다.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한다며 도입한 고용안정 정책들은 생산현장의 고용유연성을 악화시켰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세계 144개국 중 86위인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은 기업인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외국 기업의 공세를 막겠다며 채택한 산업 정책과 보호무역 장벽들은 양날의 칼이었다. 기업인들로 하여금 국산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향상 노력을 늦추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을 경제 성장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 정도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불신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돼 기업인과 국민 모두를 공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인이 국내 투자를 미루고 고용을 멀리하면 국민 소득을 줄여 국내 매출을 떨어뜨리게 된다. ‘안방’을 외국 업체에 내주고 가뜩이나 안 좋은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한층 더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기업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 결과 또한 마찬가지다. 국산품 배척과 외제 선호는 한국 기업을 난관에 빠뜨릴 것이다. 기업 수익을 악화시키고 신규 투자와 고용은 물론 임금 인상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 기업가 정신도 움츠러들게 해 고용과 소득을 줄어들게 할 수 있다.
한국 경제 주체 간 이런 불신 현상을 완화시키는 것은 경제난국 타파와 내수 활성화를 통한 저성장 구조의 고착화 탈피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기업인과 국민 사이 신뢰의 고갈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이 제시되고, 경제체질을 확 바꿔놓을 획기적인 구조개혁 청사진이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kesopyun@snu.ac.kr >
한국 경제의 주체들은 상대가 자신을 어리숙해서 이용하기 쉬운 대상으로 취급한다고 믿는다. 기업인은 자신들이 근로자의 ‘호구’로 전락했다고 푸념한다. 한국 근로자의 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데도 임금 인상과 처우개선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내 고용은 최소화하고 해외 고용만 늘린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은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국내로 되돌아오는 것을 망설인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로 유턴하겠다고 응답한 해외 진출 기업은 1.5%에 불과하다. 국민은 국민대로 기업인이 자신들을 손쉬운 돈벌잇감으로 취급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비자들은 외제가 국산보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한 수 위이지만 애국심 마케팅으로 국산품 구매를 강요한다고 말한다. 같은 국산품이더라도 내수용과 수출용이 다르다고 의심한다. 그래서인지 국산품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하락 일변도다. 온라인 쇼핑을 통해 외제품 또는 해외 판매용 국산품을 구매하는 ‘직구(直購)’의 증가세가 무섭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1~4월 해외직구 금액은 전년 대비 56%나 늘었다.
이런 현상은 크게 두 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선 세계화가 씨앗을 뿌렸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인들은 고용의 신세계를 접했다. 외국 근로자가 한국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에도 불평 없이 장시간 생산라인을 지키는 모습에 매료됐다. 유학, 여행, 인터넷 등을 통해 해외 소비 생활을 엿본 국민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가격표를 붙인 양질의 상품에 눈을 떴고,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들에 실망감을 느꼈다.
정부 정책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이런 현상을 심화시켰다.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한다며 도입한 고용안정 정책들은 생산현장의 고용유연성을 악화시켰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세계 144개국 중 86위인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은 기업인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외국 기업의 공세를 막겠다며 채택한 산업 정책과 보호무역 장벽들은 양날의 칼이었다. 기업인들로 하여금 국산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향상 노력을 늦추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을 경제 성장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 정도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불신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돼 기업인과 국민 모두를 공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인이 국내 투자를 미루고 고용을 멀리하면 국민 소득을 줄여 국내 매출을 떨어뜨리게 된다. ‘안방’을 외국 업체에 내주고 가뜩이나 안 좋은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한층 더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기업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 결과 또한 마찬가지다. 국산품 배척과 외제 선호는 한국 기업을 난관에 빠뜨릴 것이다. 기업 수익을 악화시키고 신규 투자와 고용은 물론 임금 인상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 기업가 정신도 움츠러들게 해 고용과 소득을 줄어들게 할 수 있다.
한국 경제 주체 간 이런 불신 현상을 완화시키는 것은 경제난국 타파와 내수 활성화를 통한 저성장 구조의 고착화 탈피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기업인과 국민 사이 신뢰의 고갈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이 제시되고, 경제체질을 확 바꿔놓을 획기적인 구조개혁 청사진이 실행되기를 기대한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kesopyun@snu.ac.kr >